마라톤 여행기

77422226c122f177779040c7a69e5eeb_1590046411_654.png

아, 압록강, 백두산 그리고 광개토태왕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성안 댓글 3건 조회 27,566회 작성일 08-06-23 00:00

본문

<제 1일째> 준비와 출국

만주는 어릴 적부터 나에게 항상 꿈과 희망을 주었다.
만주 지역은 주로 현재의 중국 동북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옛 고구려 시대와 발해 때에 우리 땅이었고, 일제시대에는 우리 독립군의 활동무대다.
그 만주지역으로, 마라톤대회 참가와 더불어 옛 역사유적을 탐방하러 가기로 하였다.
언젠가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약속의 땅을 찾아 나는 간다.

2008년 6월 14일(토요일).
아침 06:45분에 대전 정부종합청사 옆에 있는 둔산 간이정류장에서 리무진 버스를 탔다.
인천국제공항에 10:00시 조금 전에 도착하여 함께 간 신의섭 님과 커피를 들며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압록강 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한국에서 모두 200명 가까이 가게 되는데, S&B의 양찬우 이사님과 조정은 씨로부터 비행기 티켓을 수령하고 출국 수속절차를 간단히 마친 뒤 13:10분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1시간여 만에 대련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의 시차가 1시간 느리다.
대련공항에 도착하여 중국 공안의 안내를 받아, 단체비자를 받았으므로 비자 순서대로 입국 수속을 거쳐 중국 땅에 발을 내딛었다.
중국은 인구가 13억 명이며, 한족 만주족 조선족 티벳족 신장 위구르족 등 56개 만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한족이 52%정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요동반도에 있는 해안도시 대련은 요령성(주도는 심양)에서 2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가 60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대련공항 앞에서 우리는 전용 버스(5호차)를 타고, 대련 시내의 중심지에 있는 식당(화랑궁)에서 중식을 든 뒤 오후 3:40분경(현지시각) 단동으로 이동하였다.
현지 가이드로부터 몇 마디 중국말을 배웠다.
‘니하오’(안녕하십니까?),‘따꺼’(大兄; 선생님),“시에시에”(감사합니다.),‘쓰볼로마’(밥 먹었습니까?),‘신쿨라’(수고하셨습니다.)

대련에서 단동으로 차창관광을 하며 가는 4시간 동안 도로에 다른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동은 요령성에서 6번째로 큰 인구 76만 명의 변방도시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신의주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북한식 식당(청류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압록강변을 거닐면서 본, 중국 사람들이 몇 명씩 둘러서서 발로 제기를 차는 모습, 빈손 또는 검을 가지고 기체조를 하는 모습, 밤에 불켜진 광장에서 남녀 수십 명이 모여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이 근처가 내일 오전 압록강마라톤대회의 출발지이다.

숙소(가양양광호텔)에 체크인 한 뒤 이 호텔에서 직영하는 앞 건물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였는데, 일하는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웃으며 그냥‘시에시에’하며 지나갔다.


<제 2일째> 제3회 압록강마라톤대회 참석

2008년 6월 15일(일요일)
아침 05:30분에 모닝콜이 있었고 06:30분에 마라톤을 위한 아침식사를 호텔 1층 식당에서 간단하게 하였다.

국제 우호 압록강마라톤대회는 2006년도에 처음 생겨 이번이 3회째로 풀코스는 올해 처음 열린다. 한국, 중국, 북한, 일본, 덴마크 등에서 55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07:37분에 스타트라인을 출발하여 신의섭 님과 나란히 달리기 시작하였다.

달리는 길 오른편으로 압록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790Km를 흘러 황해바다로 들어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이다.
압록강에는 103개의 섬이 있다는데 그중 100개는 북한이 소유하고 3개는 중국의 소유로 되어 있다고 한다.
뛰는 길 옆 압록강 저편으로 북한 땅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하다.
저기는 우리 동포가 사는 땅이다. 통일을 염원하며 달리었다.

이미륵 박사가 독일에서 쓴 책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주인공의 부모님은 일제치하의 암울했던 시대였지만 늘 희망을 얘기해 준다. 3.1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체포당할 위기에 처해 압록강을 건너 국경을 넘어가는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담담하게 이렇게 얘기한다.
“세월은 그처럼 빨리 가니 비록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슬퍼 말아라.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자, 얘야 이젠 너 혼자 가거라.”

도로는 아스팔트길로 오르막이 거의 없어 뛰기 좋다. 달리는 중에 길가 단동 주민들이 “짜요!”라고 외치며 응원한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주민들의 얼굴이 밝고 여유 있는 표정이다.
우리 옆에 대련에서 외국인회사에 다닌다는 한국인 한분이 합세하여 셋이서 한참 나란히 뛰었다. 그분이 ‘짜요’라는 중국말은 한자로 加油로서 “힘내라”, 파이팅의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도 뛰면서 여러 번 외쳤다. “짜요!”

우리 뒤로 중국인 선수 한명이 거의 붙을 정도로 따라서 뛴다. 또 옆에는 오토바이가 시끄럽게 가면서 탄 2명의 남녀가 그를 응원한다. 한참을 그렇게 뛰다가 우리는 조금 속도를 늦추어 그를 앞에 보내었다. 그는 호산장성의 반환점 근처에서도 우리를 보고 아는 체 하였는데 결국은 달리기를 포기한 채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우리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반환점인 호산장성(박작성)을 돌아오면서 보니 뛰고 있는 선수들은 한국에서 같이 간 분들이 대부분이다. 저기에 한국인인 남녀 2명이 나란히 동반주하고 있다.
신의섭 님과 나는 그분들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달렸다. 어느덧 우리는 같이 뛰게 되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2기로 다녀오신 두분이었다. 그분들의 얘기를 들으며 뒤따라 뛰다가 나란히 뛰다가 하면서 지루함과 힘든 것을 이겼으며 거의 결승선까지 같이 달렸다.

기록은 3시간 51분 28초.
기록증을 주최 측으로부터 곧 바로 발급받았다.
4시간을 좀 넘기더라도 무리하지 않으려 하였는데, 매주말마다 계족산 임도를 1~2바퀴 달리기를 한 것과, 지난주 6월 6일 현충일에 실시했던, 육십령에서 향적봉, 무주리조트 설천하우스까지 25.9Km의 덕유산 종주를 한 것이 도움이 된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완주를 하고 땀을 씻기 위해 압록강변으로 갔다.
마라톤 복 차림 그대로 압록강 물에 발을 씻다가 수영을 하였다. 50m쯤 아래에는 압록강 철교가 있다. 물이 차가웠으나 기분과 마음은 상쾌하였다.

점심을 먹고 오후 2:10분경에 단동을 출발하였다.
오늘 중에 환인을 거쳐 통화로 가서 숙소를 정하기로 되어 있다. 약 6시간 30분이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전용버스를 타고 만주의 길을 가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을 보았다.
차창 밖으로 황색 소가 아닌 백색 소가 가끔 보였고, 말들이 쟁기를 끌고 밭을가는 모습도 보였다.
농촌환경이 우리나라의 1960~70년대 나의 어릴 적 시골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찾아서 간 광야 길은 여기와 얼마나 다를까.

환인에 도착하여 기원전 37년에 주몽이 고구려를 세웠다는 `오녀산성`(홀본성)을 보았다.
산이 바둑판 모양으로 웅대하게 특이한 모습이었다.
오녀산성은 길이가 약 1000m이고 3면이 100~200m나 되는 직벽으로 되어있다.
산 꼭대기에는 평지이고 숲이 있으며 샘물도 있다고 한다.
오녀산성 아래의 환인은 농촌마을로 앞에는 혼강(비류수)이 흐르고 있다.
통화로 가는 시간관계상 오녀산성에는 올라가지 못하였지만, 전망 좋은 곳에 주차한 채 산성 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환인은 고구려의 첫 수도였을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에 조선족들이 압록강을 건너가 초기에 정착한 곳이다.
현재 중국의 동북 3성에서 활동하던 우리 옛 선조들은 벼를 심어 쌀밥을 먹고 살았는데, 고구려 후손인 발해(698~926년)가 멸망하고 요.금 등 유목민족이 득세하면서 동북 3성의 벼재배 관습이 사라져 버렸다가, 1000여년이나 지난 1870년대에 우리 민족이 다시 바로 이곳 환인지방에 먼저 벼를 심기시작하여 퍼지게 했다고 한다.

통화에는 단동에서 장장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밤 8:20분경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숙소를 잡았다.
단동과 환인은 요령성에 속하고 통화는 길림성에 속한다.


<제 3일째>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다.

2008년 6월 16일(월요일).
08:16분 통화를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향하였다.
점심은 백두산의 산문에 거의 다 이르러 반점에서 들었다.
반점 옆 가게에서 중국 인민폐 10元(1元 = 160원)을 주고 작은 고량주 2병을 샀다. 56도라고 쓰여 있는데 술이 새는지 냄새가 새어 나온다. 누가 짝퉁인 것 같다고 한다.
중국에 가장 많은 것이 3가지가 있다고 하던데. 즉 사람, 자전거, 짝퉁

백두산 산문에 도착하니 입구에 장백산(長白山)이라고 쓰여있다.
중국에서 관리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40여분 동안 서파(西坡)로 산길을 올라간다. 산을 올라갈수록 나무들의 키는 작아지고 잡목과 풀들이 많아진다. 월화수 나무라고 하는 자작나무가 많다.
통화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구름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는데, 백두산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산위로 구름이 뭉게뭉게 떠 보인다. 귀가 약간 눌리는 것이 느껴진다.
백두산이 가까워지고 서파주차장에 이르러 셔틀버스에서 내렸다.

정상까지 1400여개에 이르는 돌계단이 나 있다.
이 계단들만 오르면 백두산 정상에 오른다.
계단 주위 산 녘에는 처음 보는 옅은 노란색의 두견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쌓인 눈이 미처 녹지 않고 얼음을 이루고 곳곳에 남아있다.
연로하신 어른이나 계단을 오르기 힘든 분을 가마에 태워드리고 돈 버는 가마꾼들도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어제 마라톤을 달린 때문인지 다리가 좀 뻐근하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이랴.
저기가 바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이고 그 꼭대기에 천지가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백두산의 정상에 이르렀고 우리는 보았다.
아! 천지.
나는 이제야 여기에 왔고, 넓은 가슴을 열어 아낌없이 반겨주는 푸른 물을 보았다.
몇 년 만에 와 보는 것인가.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것이니.
이 천지의 물줄기가 연원이 되어 흘러가서 압록강이 되고 두만강이 되고 송화강이 된다.
전체면적은 10㎢, 호수 주위 길이가 13㎞,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373m나 되며, 둘레에 16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저기 호수 중간 왼편으로 얼음 한 조각이 떠가는 것이 보인다.
천지 쪽과 우리가 올라온 서파 쪽을 둘러보니 장쾌한 파노라마가 가슴에 안겨온다.
모두 다 상기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나는 이번에 같이 오지 못한 아이들 나린이, 수범이, 아내, 그리고 가족들과 아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하였다.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3)
저 천지를 우리 어머니도 몇 년 전에 오셨으나 안개가 많아 보지 못하셨다고 하셨고,
우리 5호차 일행 중에 압록강마라톤대회를 첫 회부터 3번째 참석한 분이 두 분이나 계시는데 이번 3번째에 보시게 되었다고 하신다. 실제로 8번이나 찾아와서 천지를 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천지는 간절한 기다림과 꿈, 사랑과 함께 다가온다.

백두산 서파 정상에 `5호경계비`, 비석이 하나 서 있다. 한 면에 조선, 다른 한 면에 중국이라고 쓰여 있다. 이로써 중국과 북한 땅이 나누어진다는데 느낌이 잘 오지 않았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 아닌가.

그리움과 아쉬움을 남기며 백두산 정상에서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서파주차장에 있는 매점에서 기념으로 백두산 그림책 1권과 지도가 나오는 손수건을 샀다.
산문으로 돌아와 근처의 `금강대협곡`을 둘러보았다.
금강대협곡은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미국의 콜로라도 강에 있는 그랜드캐년에 비하여 작은 캐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백두산과 천지, 금강대협곡을 탐방하고 저녁 8:30분경에 다시 통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하고 어제 묵었던 호텔(通鋼賓館)에서 휴식하였다.


<제 4일째> 옛 고구려 도읍지 집안시의 “광개토태왕비”와 “장군총”

2008년 6월 17일(화요일)
식사를 일찍 하고 07:30분경 통화시를 출발하여 집안시로 향하였다.
날씨는 화창하고 덥다.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KBS방송국에서 방영되었던 역사 스페셜(광개토대왕비, 장군총 등)을 테이프로 보았다. 역사공부가 많이 되었다.
오늘은 고구려의 옛 도읍지를 찾아 광개토태왕비와 장수왕릉을 탐방하러 간다.
우리의 자존심을 찾으러 간다.

집안시.
고구려 2대 유리왕 22년(서기 3년) 환인에서 천도하여 와서 20대 장수왕이 평양으로 재 천도하기 전까지 424년간의 도읍지이다.
집안시에는 1500년 이상 된 고분이 1만 2300 여개나 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 최대의 무덤떼이다.
집안은 아직도 고구려다.
저 남쪽 건너편은 북한의 자강도 만포시로 나무가 적은 헐벗은 산이 보인다. 옥수수 밭이라고 한다.

광개토태왕비,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
높이 6.39m, 글자 수 1775자, 세계 최대의 비석, 광개토태왕(391~412년)이 죽은 지 2년째 되는 414년에 그 아들 장수왕이 건립하였다.
비(碑)는 1880년 전후에 개간을 하던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1982년 중국 당국이 세운 단층의 대형 유리 비각 속에 보호되어 1600년의 풍상을 이겨내며 우람차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정복군주인 광개토대왕은 최강고구려, 천하의 중심은 고구려라는 자신감에 가득하였다.
18세에 즉위한 광개토태왕은 22년 재위동안, 만주와 한반도의 백제, 신라지역에 걸쳐 동일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한 통일의지를 불태웠다.

비문에는 4면에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에 마모되어서 잘 보이지 않는 글씨가 많다. 글 내용은 크게 3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고구려의 건국신화, 아버지(광개토태왕)의 업적, 수묘인(묘를 지키는 사람)의 의무 등이다.
충주시 기린면에 있는 중원고구려비와 함께 당시 역사사실을 확인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고 한다.
광개토태왕비는 고구려 유적을 대표할 만큼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일제가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일 고대사를 왜곡시키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당시 고구려가 동아시아에서 차지한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 내용도 풍부하여 한권의 금석문 ‘바위 책’이다.
서울시 전쟁기념관에도 유사한 크기로 복원하여 있다고 한다.
비에서 동북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에는 자연 상태의 허물어진 `호태왕릉`이 네모난 계단식 석실묘 형태로 마치 작은 산처럼 서 있다.

동아시아의 피라미드, 장군총.
광개토태왕의 아들 장수왕의 묘로 알려진다. 서남향이고 광개토태왕비가 있는 곳에서 1Km 정도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고구려왕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을 준비했는데, 장수왕도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에 이미 국내성에 자신의 무덤을 준비해 놓았고, 관례에 따라 시신을 옮겨 이곳에 장사를 지낸 것이라고 한다.
높이 12.4m, 밑변 32m, 1500여년 전 5세기에 화강암으로 들여쌓기와 그랭이 공법으로 축성하였다고 한다. 크기가 5층짜리 아파트와 맞먹을 정도로 웅장하다.
4층~5층 한가운데 널방(묘실)이 있어 입구로 들어가 살펴볼 수 있었는데, 지키는 사람이 있고 안에서 사진은 찍지 못하게 했다.

우리의 미래의 모델로서 동아 지중해의 영원한 맹주였던 고구려의 옛 땅,
고구려는 우리가 구할 수 있는 21세기적인 의미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민족이 생존전략차원에서 설정해야 할 패러다임의 한 모델로, 동아 지중해 모델”(East Asian-Mediterranean-Sea)로써 고구려를 삼을 수 있다고 어느 사학자는 주장했다.

역사에는 늘 가정이 있다.
우리나라가 최근에 이르러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고 세계 11~12위의 경제규모를 갖춘 경쟁력있는 국가로 비상하고 있지만, 만일, 삼국통일을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이룩했다면 우리민족은 반도국가가 아니라, 대륙과 한반도, 해양을 포함하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일찍부터 동아 지중해의 중핵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시대의 전성기를 더욱 계승하여 강력하고 큰 나라가 되고, 중국의 영향을 받기보다 상호 보완하면서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연해주 지역의 수렵 삼림문화, 북만주의 초원 유목문화, 요동 벌판의 평원문화를 주체로 삼아, 서역문화 중국 화북문화 강남문화 해양 남방문화 등을 수용하여 더욱 개방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했을 것이다.

집안시내는 처음 와보는 곳인데도 왠지 낯설지 않아 보였다.
거리에는 작은 마티즈 차들이 지나가는 것도 많이 보인다. 중국에서 만든 짝퉁 마티즈라고 한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그 거리와 사람들이 정겨운 생각이 든다.

집안시내의 古多村이라 쓰인 음식점에서 중식을 들고 12:30분경 단동으로 출발하였다.
오늘 오후에는 단동으로 가서 오늘 중에 호산장성(박작성), 일보과를 보는 일정이 남아 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여흥시간을 가졌다.
만주 벌판의 장거리를 이동하는 관계로 생리적인 것은 급한 분이 요청할 때 수세식이 아닌 자연식을 이용하였다. “중국이니까.”

압록강을 보며 내려가다 단동시 근교에 있는 `호산장성`에 이르렀다.
호산장성 주차장에서 성곽에 올라가기전에 `일보과`(一步跨)에 먼저 갔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북한 땅이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국경이 나뉘는 하천의 길이가 7~8m쯤 되어 보인다.

호산장성은, 이틀 전 6월 15일 마라톤 풀코스를 뛸 때 근처 압록강 쪽으로 반환점이 있던 곳이다.
호산장성 문 입구에서 성곽 정상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올라가는 계단이 만만찮다.
호산장성을 중국은 만리장성이 시작한 곳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고구려 때 우리 박작성이 있었던 곳이다.

단동에 다 오니 어둑해진 가운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저녁식사 후 호텔 앞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고, 길가에 있는 포장마차 조개구이 집으로 가니 정든 5호차 일행 여럿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함께 노래방을 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노래방 주인에게 언어가 소통되지 않아 손짓 몸짓으로 얘기하여 쓴 종이에 싸인까지 받고 방을 정하였다. 기초적인 중국어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국경도시 단동의 노래방에서 우리는 모두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작은 추억거리를 남기며 숙소로 돌아 왔다.


<제 5일째 마지막 날> 다시 단동, 대련을 거쳐 인천으로

2008년 6월 18일(수요일).
이제 마지막 날이다.
호텔방에서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TV를 보니 우리나라 방송채널도 나오는데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다.
호텔 1층에서 뷔페식 아침을 먹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서, 비가 내는 가운데 압록강 철교와 단교를 도는 선상 유람을 하였다.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요동을 정벌하려던 군사들을 회군한 `위화도`가 멀리 보이고, 북녘 땅 신의주 쪽에서 북한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압록강 유람을 마친 뒤 서둘러 단동을 출발하여 대련에 12:30분경에 도착하였다.
중국 도착 첫날 점심식사를 들던 식당 화랑궁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우리들의 만주 장정은 끝난다.
첫날 대련에서부터 단동, 환인, 통화를 거쳐 백두산까지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 갔다가, 백두산에서 통화, 집안, 단동을 거쳐 대련까지 다시 되돌아오는, 4박5일 동안 총 2000Km의 왕복 버스여행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6월 18일(수요일) 14:40분(현지시각) 대련공항을 이륙하여 17:00경(한국시각)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항상 여행이란 그런 것이지만, 이제 꿈과 낭만, 아쉬움은 잠깐 가슴에 담아두고 현실로 충실하게 돌아가야 한다.
각자 새로운 탐험과 도전, 변화와 발전을 찾아 나서야 한다.

늘 친절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시는 에스앤비의 양찬우 이사님과 조정은 님, 유머러스하고 성격이 좋은 가이드님, 중국인 버스기사님 샨 따꺼, 100회 마라톤의 의정부 박청우 세무사님과 백현태 님, 보스턴마라톤 2기의 박희경 님, 파주에서 오신 파사마 4분, 인천에서 오신 점잖으신 선생님, KAIST마라톤의 울트라맨 신의섭 님, 그리고 5호차에 동승하여 같이한 다른 일행 43명...... 모두 생각이 납니다.
고마운 마음 전하고 행운을 빕니다.

최 성안 올림.
추천0

댓글목록

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즐거운 마라톤과 백두산 관광 그리고 고구려의 옛 도읍지 문화탐방까지..좋은 추억을 남기는 여행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더 열심히 잘 하는 에스앤비투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동일님의 댓글

김동일 작성일

안녕하십니까?여행기 잘읽어보았습니다함께한여행이 좋은추억이되여언제나마음에남으리라 믿습니다5호차에 함께했던 모든분들건강하시길빕니다 인천주안에서..

김선명님의 댓글

김선명 작성일

반갑습니다."최성안님의 여행기는 글이라기보다는 4박5일 동안 5호차

문화탐방이란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습니다. 추억을 함께한 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