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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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마라톤 여행후기 - 안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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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경호 댓글 1건 조회 12,562회 작성일 0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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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압록강으로

제2회 한 · 중 압록강마라톤대회를 접수한 후 마음을 들뜨게 한 지 3개월이 지나 오늘 드디어 중국 페리 동방명주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인이 225명인데 페리호에 오른 사람은 인솔자를 포함하여 22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행기를 이용한 것이다. 15시간 이상 페리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곳 신의주를 보며 압록강을 따라 달리고 우리 옛 조선의, 고구려의 영토인 국내성에서 광개토대왕의 숨결을 느끼며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여정이다.


오래 전에 최인호 님의 소설 ‘제왕의 문’을 읽고 같은 행로를 여행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는 한반도 지형이 새겨 진 옷을 입고 한라산 백록담과 백두산 천지를 오르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지난 3월 2일 오른 백록담은 안개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깨끗하지 못해서라고 자책하였다. 그래도 거센 비바람에 한치 앞도 보지 못했고 몸을 가늠치 못했던 이태 전보다는 나았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되었다.


최인호 작가는 와랑와랑 흐르는 압록수에 머리를 묻고 민족을 생각하며 울었고 광개토대왕의 상징이라고 굳게 믿는 # 문양을 천지에 새겼다고 하였다.
나는 과연 이번 여행에서 그리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랬다. 마라톤 여행을 한 지 5년이 된 나는 이번 여행을 달리기 보다는 한민족을 생각하는데 의미를 두기로 하였다.


제주도에서, 강릉과 춘천에서, 대전에서 마니아들은 홀로 배에 올랐고 부부 다섯 팀이 함께 6월 2일 오전 10시가 넘어 단동 항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5시에 인천항을 떠났으니 배에서 17시간을 머문 것이다. 인천에서 제주까지 13시간, 부산에서 시모노세끼항 까지 14시간(실제로는 9시간)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동방명주는 거북이었다. 그나마 메케한 매연을 마시며 갑판위에서 소주로 첫 만남을 보내고 단잠을 잔 것이 지루함을 잊게 하였다.

단동항에 내리기 까지는 지루했다. 중국의 만만디 근성에 우리의 급함이 충돌하여서 일까. 중국 여행이 이번으로 세 번째인데 내손에는 김훈 님의 소설‘ 남한산성’이 쥐어져 있다.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는 조선을 침략하였다. 병자호란이었다.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었으니 조청전쟁이 맞을게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47일간 갇히어 항거를 하다가 결국 굴욕적으로 성에서 나왔다. 작가는 “그해 겨울, 갈수 없는 길과 가야할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하였다. 땅의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가 유일하게 육지로 연결된 곳은 지금의 중국이다. 우리 옛 고구려 선조들은 서토를 지배하였고 그들은 수나라, 당나라 때 우리의 옛 땅을 침략하였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들의 땅을 찾는 것이다. 아니 우리의 옛 영토와 1962년 조·중 변계조약으로 그들이 1/3을 차지한 백두산을 오르려 하는 것이다.
단도항에서 단동시내까지 이동하는 40여분 동안 차창으로 비치는 시가지는 중국이 꿈틀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였으나 모를 심는 농촌의 정겨운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칠보산! 평양이 고향인,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곳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평양소주를 마셨다. 남남북녀라 했던가. 그녀들은 남쪽의 노래를 불렀고 남쪽 사람들의 귀에 익은 ‘반갑습니다.’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어울려 함께 불렀다. 정치인들이 간혹 북쪽에 가서 동포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가끔 도마에 오르기도 하는데 나 역시 도마에 오르지 않을까. 가끔 주장이 공격적이라 빨갱이 같다는 소리도 들었던 터이라 감각이 무디어 진 것일까. 그들은 악수를 청하는 우리 손들을 가볍게 잡았다. 금강산에서 만났던 여성접대원이 화들짝 놀라며 “우리는 처음 보는 남자와 손을 잡지 않습네다.” 라고 하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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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보과 - 뒤쪽은 북녘 땅)

우리는 그들이 호산장성이라고 하는 천리장성으로 향했다.
고려 말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한 이성계가 회군을 하였다는 위화도가 압록수 옆에 앉아있고 신의주가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호산장성이라는 상징물을 끼고 옆으로 10여분 걸어가니 일보과 (一步跨) 라고 써져있는 비석이 있었다. 이곳은 불과 한발자국 사이로 朝와 中의 경계를 이룬다 하여 붙여 진 이름이라 했다.

그랬다. 청동오리 머리빗 색깔이라는 뜻의 압록수는 우리 한반도와 중국을 경계로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민족의 아픔과 애환을 지닌 채 이렇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한발자국 껑충 뛰면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곳이다. 나는 물가로 내려갔다. 그리고 #문양을 그렸다. 물은 차가웠다.


우리는 산성을 올랐다. 30여분 오르는 산성을 우리는 천리장성이라 하고 그들은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성 꼭대기에 오르니 1,400여 년 전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움을 하였음직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사방은 모두 평지였다.
북쪽 사람들이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고 중국 쪽 사람들도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되어 우렁찬 목소리로 호령하였다.
(천리장성- 중국은 호산장성이라 주장)
“이놈 세민아! 이곳이 어디라고 왔느냐!”
우뇌와 같은 말발굽 소리와 천하를 호령하는 고구려 장수들의 목소리가 가슴을 벅차게 한다. 그런데 이곳이 우리 땅이 아니고 나는 관광객이 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의식과 역사를 도외시하는 교육 현실에 분노를 했다.

다시 단동시내로 돌아오면서 내 시선은 줄곧 압록수와 위화도 그리고 신의주에 박혀있었다.
천지에서부터 790km를 흘러 황해로 흘러가는 강은 최고 수심이 123m이고 너비가 2km 되는 곳도 있고 일보과 같이 1m 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
압록수는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평양에서 태어났다는 장봉선 양은 알려주었다. 1,400여 년 전,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당나라 소정방의 군사를 이곳에서 수장시켰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이 이곳을 넘었다.

어느새 압록강 철교에 도착했다. 우리는 유람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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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빌딩이 성장하는 부를 상징하듯이 키 솟아 올라있는 반면 江의 다른 곳은 회색이었다. 북쪽 아이들이 멱을 감고 있었다. 같은 핏줄이 무언지 착잡하고 눈물이 났다.
소설가 박완서 님은 ‘여행가방’ 이라는 에세이집에서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작가의 고향이 북쪽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왜, 어이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선친 고향이 북쪽이라 그랬을까. 반갑다고 흔드는 손에 그들도 손을 흔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압록강철교를 걸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는 만주 진출의 야심을 품고 1911년 철로를 세웠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미군기에 의해 철로가 끊어졌다. 그 옆으로 또 다시 세워진 철로를 통해 단동에서 신의주까지 버스와 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2007년 5월 17일 경의선이 반세기 만에 개통되어 시험운행 되었다.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어 부산에서, 서울에서, 개성과 평양을 통해 이곳 신의주를 경유하여 유라시아로 향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단동국제호텔에 도착한 후 우리는 단동시 문화체육국에서 주관하는 제2회 한중압록강마라톤대회 디너쇼에 초청되었다. 푸짐한 음식에 맥주로 내일 마라톤을 위하여 건배를 하였다. 이렇게 여행의 이틀이 지나갔다.

2007. 6. 1 - 2






우리의 옛 영토 국내성 (‘07. 6. 3)


압록강과 신의주가 잘 보이는 23층 제일 좋은 자리에 음식을 앞에 놓고 앉았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대조를 이루고 있는 양쪽 모두가 햇살을 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어찌하랴.

런닝화 끈을 조이고 압록강 변 대회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요란하다.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안산시청이 표식 된 광고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후 가볍게
압록강 공원을 거닐었다. 몇몇이 모여서 기체조를 하는 사람들, 춤을 추며 웃고 있는 사람들,
오전 7시,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도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사람들... 공원은 사람들의 휴식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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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시선은 그 반대쪽의 회색을 향했다.

우리는 칩을 이용하여 기록을 측정하고 있는데 이곳은 아직 생활체육이 보편화되지 않아 골인하는 순서로 기록을 측정하였다.
200여 명의 한국인과 2,000여명의 중국인들, 우리는 40대 이상
이고 그들은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하프 선수들이 출발을 하였다.
나는 10km 를 신청하였지만 뒤에 따라 붙었다.
기록과 상관없이 사진을 찍으며 즐기려고 애초에 마음먹었다.

어제 갔던 천리장성 벽화가 눈길을 끌어 잠시 멈추어 포즈를 취했다.
주로 옆에 늘어 선 그들의 환영에 손을 흔들며 화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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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안녕하세요~최경호 선생님! 잘지내셨어요?

선생님의 여행기를 보며 저 또한 우리의 역사와 민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내년에 또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