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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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동경마라톤대회 기행문-합천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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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두현 댓글 1건 조회 13,110회 작성일 09-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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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2일 드디어 개벽일이다. 새벽이 세상을 깨우기도 전에 잠을 깨 억지로 잠을 청해도 다시는 오질 않는다. 일찍 일어나 심신을 맑게 하고, 어제 남은 약밥에 스테미너 식품으로 접시를 채웠다.
마라톤 출발 지점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워싱턴호텔 25층 스카이라운지는 멋졌다. 벌써 준비 차량들이 모여들고 자원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식사보다는 달릴 장소를 바라보는 흐뭇함에 더 빠져든다.

빨리 달리고 싶다. 어제 정리해 놓은 준비물을 하나하나 챙긴다. 가슴이 쿵당쿵당 한다. 무릎 때문에 너무나 오랫동안 고생을 해서 테이핑을 이리 저리 붙이며 하루를 잘 부탁한다는 애원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한다.
호텔로비에 북적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대회참가자다. 할머니, 할아버지, 특히 여자들이 많다. 물품보관소로 향하는데 인산인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참여했을까? 7.5대 1의 경쟁을 뚫고 참여하니깐 보람이 무척 클 것이다.
자국인도 하루 전에 배 번호를 받고 동경에서 묵어야 한다. 복잡해도 이렇게 복잡한 거리는 처음이다. 앞으로 전진이 안 된다. 양옆의 이동식화장실이 끝이 안 보이고, 중간에 손 씻을 세면대를 설치하는 배려까지 아끼지 않았다.

물품보관 후 집결지인 2층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왔다가 갔다가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가는 곳마다 펜스요 봉사자가 가로 막는다.
겨우 통로를 찾아 오르는데 일행이 일본인 듯한 사람에게 얼렁뚱땅 일본어(모시모시 ∂§☆^∬^♂¢......)로 시간을 묻는데 눈이 휘둥거래 쳐다 보다가 “저 한국 사람인데요”라고 해 배꼽을 잡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재미있는 코믹 일본어 때문에 긴장도 풀리고 시원하게 화장실도 다녀왔다. 우리의 B그룹으로 가니 벌써 도로에 꽉차서 맨 뒤에 붙었다. 출발선이 보이는 곳으로 내빈 소개를 하는데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왜 그리도 많은지... 그저 부러울 뿐이고.
드디어 9시 10분이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출발! 총성과 함께 뿌려지는 꽃종이 삐라가 하늘을 수놓는다. 꽃잎 세례를 받으니 기분이 좋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 해도 주자에 밀려 멈출 수가 없다.

연변엔 환영객으로 꽉~차 있는데 그 열광하는 응원의 박수와 환호를 잊을 수 없다. 다 함께 축제를 즐기는 문화수준은 높이 평가해줘야겠다. 계속 밀려간다. 환영 인파속에 응원 공연이 있는지, 특별한 건물과 문화를 찾는 것도 힘들다.
감격이다. 흥분이 가라 않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듯하다. 이런 마라톤대회에 참여를 하다니 정말 영광이다. 어느 누가 이렇듯 벅찬 가슴의 환희를 알까? 동경시내 한복판에 차를 멈추고 어느 누가 달릴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우리 달림이 만이 할 수 있는 영광이 아니겠는가?
완벽한 준비, 완전한 진행, 열과 성을 다하는 자원봉사자, 함께 즐기는 시민의식, 깨끗한 거리,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출발 전 먹은 영양제 팩은 너무 주변이 깨끗해 버릴 수가 없어 들고 다니다 휴지통을 찾아가 버렸다. 우리 모두 한국에서는 막 버렸었는데 벌써 동화되는 것 보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은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산물인가! 사무라이 정신인가! 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법과 질서를 지킨다. 일본인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웃으며 말해도 속으로는 칼을 품는지 모른다.

대열에서 벗어나 간간히 사진을 찍고 또 달리는 그야말로 즐기는 달리기를 한다. 우리나라엔 여성마라토너가 매우 적다. 여기엔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달리지만 특히 여자가 많아서 좋다. 여성분과 함께 달리면 분위기가 좋~찮아요!
65세 할아버지가 매일 풀코스를 달리는데 오늘이 52일 째로 달리는 기네스 신기록이란다. 입이 딱 벌어진다. 앞을 봐도 끝이 없고 뒤를 봐도 끝이 없다. 갔던 길을 돌아오는 반대 편 도로에 후미가 보이지 않는다. 풀코스 제한시간이 7시간인데 주루에 제한시간이 표시되어 있으며 1초도 틀리지 않고 펜스를 치고 번호판을 제거 후 수거차에 태우는데 일명 청소차라 부른다.
청소차가 지나가면 일사분란하게 정리정돈이 이루어지는데 행사를 했는지 전혀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다. 정말 주인정신이 투철하다. 우리도 조금만 주인의식을 갖는다면 휴지 하나 버리지 않고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예상대로 무릎이 많이 아파온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등엔 합천 홍보물을 붙이고 달리는데 걸을 수는 없다. 사진 찍는 핑계로 쉬고, 급수대는 물마신다는 빌미로 빠지지 않았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걸을 수는 없다. 이곳이 일본이 아닌가? 저들 앞에서 강하게 보여야 우릴 만만히 안 볼 것이다. 천천히 6분 페이스로 꾸준히 달렸다.
간간히 보이는 한국인은 너무 반가워 말을 다 걸었다. 비가 오다 멈칫하는 순간 햇살이 얼굴을 비춰 즐거워했더니 구름이 샘이 났는지 금새 가려 버린다. 비는 발걸음은 무겁게 하지만 달리기엔 시원해서 좋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우리 일행을 찾느라 눈이 빠진다. 워낙 많은 인파라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 서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달리고 또 달리고, 참고 달리고 또 달렸다. 다리가 갑자기 멈출 듯 아프다.
오른쪽 다리는 안 아픈 곳이 없다. 신경이 끊이는 듯 멈칫하기가 여러 번이다. 그럴 때 마다 놀란다. 이러다 주저 않는 건 아닌가? 일본인이 보는 곳에서 주저앉는 꼴을 보일 순 없잖은가!

35km 지점에서 영양제를 또 먹었다. 간식도 계속 챙겨 먹었다. 피니쉬가 가까워 올수록 인도의 환영 시민들이 주자들에게 주려고 간식을 내민다. “깐빠레”를 외치며 빵, 사탕, 주먹밥, 양과자, 초코렛....전부 손수 장만한 것들이다.
오늘 들은 “깐빠레”! 원도 한도 없이 들었다. 피니쉬가 가까워오니 또 뭐라고 응원을 하는데 아마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는 뜻일 것 같다.
39km, 40km 마지막 에너지를 토해낸다. 41km, 42km 눈앞에 피니쉬가 보인다. 개선장군처럼 우아하고 환희에 찬 모습으로 통과했다. 피니쉬 아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 감개무량하다. “왔노라! 달렸노라! 완주했노라!”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오로지 한국인이라는 자존심만으로 완주를 했다.

일행과 주고받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나오니 친절하게 신발의 칩을 떼어주고, 복스런 아가씨가 웃으면서 축하의 인사를 하면서 메달을 걸어주니 모든 피로가 가셔지는 것 같다. 수많은 메달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달리는 많은 달림이 들이여 힘을 내소서!
바람이 세차다. 이번엔 춥다며 긴 타올을 어깨에 걸쳐준다. 친절한 봉사자의 마음처럼 따뜻하다. 완주 봉투에 밀감, 바나나, 물도 준다. 벌컥 벌컥 마시는 물에 온 몸의 세포가 깨어난다.

물품을 찾아 갈아 입을 장소로 들어가는데 무슨 포로수용소 같다. 엄청난 인파가 봉사자의 지시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앉아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한다. 일행과 그것도 기념이라며 사진을 찍는다.
감동의 대회인지라 순간순간이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 삼각 김밥의 맛은 싸늘한 도시락 보다 낳다. 무두 잘 달려 즐거운지 웃음이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제는 깔고 앉은 신문쪽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분리수거 한다.

주자와 응원자는 엄격하게 분리되는 대회, 출구로 나오는데 가족이나 환영인파가 구름처럼 몰려있다. 10만 인파가 군집한다더니 엄포가 아니었다. 가족에게 줄 꽃다발을 들고 있는 아가씨의 눈이 벚꽃처럼 아름답다.
버스에 타고 이동하는데 비가 세차게 몰아친다. 저 멀리 아직도 많은 주자들이 비를 맞고 달리고 있다. 6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반은 걷고 반은 달린다. 정말 죽을 맛일 게다. 그러나 얼굴엔 웃음이 가득 즐거움이 넘쳐난다.
동경시내에서 차를 가로막고 달렸다는 그 감동! 그 감격! 만으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다. 그 누가 우리와 같은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가? 이제는 뉴욕 한 복판에서 차를 세우고 싶다. 그날이 올 때까지 아자!

함께해주신 양찬우이사님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좋은 추억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음에 또 좋은 인연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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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저 멀리 동경마라톤에서도 합천를 알리고 오셨네요!! 좋습니다^^

정두현님 동경마라톤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국내, 국외 대회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희망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