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동압록강마라톤대회+백두산(북파) 항공 4일

요약정보
기간 2024년 10월 12일 (토) ~ 2024년 10월 15일 (화)
모집인원 40 명 모집여부 진행
일정 한국출발   2024년 10월 12일 (토) 08:05   KE 831
한국도착   2024년 10월 15일 (화) 20:00   KE 834
모이는곳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3층 H카운터 앞 모임. S&B투어 깃발 확인

(모이는 장소는 변경될 수 있사오니 출발 전에 확정된 장소를 확인해주세요) 

상품가격 예정

구분 상품가 유류할증료 총 금액
성인 1,390,000원 0원 1,390,000원
어린이 1,251,000원 0원 1,251,000원

♣ 유류할증료(불포함) : 61,600원 (2023년 11월부 한국발 왕복 유류할증료) 

* 유류할증료는 항공사로부터 1개월 단위로 사전 고지되어, 예약/출발일과 관계없이 '잔금납부일'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 잔금납부 이후 유류할증료가 인상되어도 차액을 징수하지 않으며, 인하되어도 환급하지 않습니다.


※ 상기 여행요금 및 유류할증료, 제세 공과금은 유가와 환율에 따라 인상 또는 인하될 수 있습니다.

※ 상품별 모집인원(15명) 미충족 시 상품 및 상품가는 변동될 수 있습니다.

여행특전

* 마라톤 환영만찬

* 북측 신의주와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를 바라보며 압록강을 달리는 코스와 완만한 코스

* 단동시 문화체험 및 음식문화체험

*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금강대협곡 조망

* 마라톤 마니아는 물론, 가족 단위의 여행에도 안성맞춤


포함사항

◈ 왕복항공권

◈ 호텔(2인1실), 차량, 식사, 관광지 입장료

◈ 기사/가이드 팁

◈ 전쟁보험료,관광진흥개발기금,공항세

◈ 최대 1억원 해외여행자 보험

◈ 대회 등록 대행


※ 상세 설명 ※

- 호텔 숙박 : 성인 2인1실 기준

- 어린이 요금 : 성인 2인과 같은 방 사용 조건

 (성인1인 & 어린이1인, 2인1실 사용시 어린이 요금 아닌 성인 요금 적용)

- 싱글룸 사용 시 추가 금액 발생

- 여행자 보험 : 최대1억원 해외여행자 보험

 (상해사망 1억원, 해외상해의료비 300만원, 해외질병의료비 100만원 등.

 단, 71세이상-상해사망1억,질병사망0원 / 15세미만-사망담보없음)


불포함사항

◈ 대회 등록비-환불 불가

◈ 개인 여행경비(물, 주류, 자유시간 개인비용 등)

◈ 중국 단체비자 : 45,000원/인 (여권원본, 증명사진1매, 인적사항)

 * 여권유효기간은 비자접수일 기준 6개월 이상, 속지 2면이상 여유 필요.

 * 증명사진의 경우 최근 6개월 이내 촬영된 ‘여권용 사진’으로만 가능합니다.

  (흰색배경, 안경 탈의, 귀와 눈썹이 가려지면 비자접수 자체가 불가합니다.)

 * 중국 대사관 단체비자(여권원본 필요) 기준 안내이며, 추후 별지비자(여권사본으로 가능)로 발급가능 시 별지비자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 유류할증료 : 61,600원 (2023년 11월부 한국발 왕복 유류할증료) 

 * 유류할증료는 항공사로부터 1개월 단위로 사전 고지되어, 예약/출발일과 관계없이 '잔금납부일'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 잔금납부 이후 유류할증료가 인상되어도 차액을 징수하지 않으며, 인하되어도 환급하지 않습니다.



참고사항

[항공정보] 대한항공(Korean air)

◎ 그룹 좌석 사전 좌석 배정 불가.

  그룹 좌석은 항공사의 고유 권한으로, 여행사에서 지정해 드릴 수 없습니다.

  출발 당일 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에게 요청하시면 최대한 고객님의 편의를 고려하여 좌석 배정이 되도록 도와드릴 것입니다.

◎ SKYPASS 마일리지 70%(약 10,000마일) 적립 가능

  마일리지의 적립은 여행을 다녀오신 후에도 가능합니다.

  탑승권을 버리지 마시고 소지하시어 여행 후 항공사에 요청하시면 됩니다.

  단, 출발 전 해당 항공사 마일리지에 가입되어 있어야 적립할 수 있으므로 사전 확인 부탁드립니다.

◎ 그룹 좌석은 마일리지 좌석승급이 불가합니다. 담당자에게 미리 별도로 문의해 주세요.

◎ 수하물규정(미주 외)

  - 위탁수하물: 무게 23kg 이내, 세 변의 합 158cm 이내, 1개

  - 기내수하물: 무게 10kg 이내, 각 변이 각각 A 40cm, B 20cm, C 55cm 이내, 1개

◎ 어린이기내식

  - 출발시: 햄버거/스파게티/오무라이스/돈가스(2가지 선택)

  - 귀국시: 햄버거/스파게티/피자/핫도그(2가지 선택)


* 백두산 현지기상상태(기상악조건)로 인해 계단 등정이 통제될 경우, 천지관망이 불가할 수 있습니다.

단동압록강마라톤 YALU RIVER INT'L MARATHON


* 대 회 일 : 2024년 10월 13일 (일)

* 코   스 : 15,000명 [풀코스 - 5000명, 하프코스 - 5000명, 미니코스 - 5000명]

* 스 타 트 : 풀코스 - 08:00 / 하프코스 - 08:00 / 미니코스 - 08:00 

* 제한시간 : 풀코스 - 6시간  / 하프코스 - 3시간  / 미니코스 - 1시간

* 대회등록비 : 풀코스 - 50,000원 / 하프코스 - 40,000원 / 미니코스 - 30,000원

* 단, 대회등록만 신청시 1인당 $100

* 대회등록마감 : 2024년 7월 21일 (금)

* 프로그램 단체 21명 신청시 한명분에 대해 공통경비 제공


* 북측 신의주와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를 바라보며 압록강을 달리는 코스와 완만한 산지코스

* 마라톤 환영만찬

* 단동시 문화체험 및 음식 문화 체험

*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금강대협곡 조망

  

※ 중국의 모든 마라톤대회는 대회일 2개월전에 시정부, 성정부 및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 최종확정됩니다.

1일 2024년 10월 12일 (토)

인 천

심 양

단 동
 
KE 831

전용차
06:00
08:05
08:55
09:30
13:00
14:00


18:00
20:00
인천국제공항 제2청사 3층 H카운터앞 모임
인천출발 (약 1시간 50분소요, 시차1시간)
심양국제공항 도착, 입국수속
가이드미팅후 단동으로 이동(225Km,약3시간30분소요)
중국 최대 변경도시인 단동도착 후 중식
- 압록강유람선 탑승하여 북측 조망
- 호산장성(고구려 박작성)
- 일보과(一步跨)
환영만찬 참석
호텔투숙 및 휴식

단동 중련호텔 ZHONGLIAN HOTEL 또는 동급 (2인 1실)

조:기내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2일 2024년 10월 13일 (일)

단 동









통 화
 
도 보






전용차
04:30
05:30
06:30
08:00



13:00
12:00
17:30
19:00
기상
조식 후 06:20 도보로 대회장 이동
대회장 도착[도보 10분] 후 스트레칭
압록강국제마라톤대회 START
풀 코 스 : 08:00 제한시간 6시간
하프코스 : 08:00 제한시간 3시간
미니코스 : 08:00 제한시간 1시간
대회종료->호텔개인위생->중식
단동출발, 통화로 이동 (약 3시간 30분 소요)
통화도착 후 석식
호텔투숙 후 휴식

통화 SOUTHERN CHANGBAI EXECUTIVE HOTEL 또는 동급 (2인 1실)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3일 2024년 10월 14일 (월)

통 화
백두산



통 화
 
전용차
05:30
전 일



16:00
20:00
21:00
호텔 조식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이동 (약 4시간 소요)
- 백두산 천지(해발 2,190M)
*백두산 현지기상상태(기상악조건)로 인해 계단 등정이 통제될 경우, 천지관망이 불가할 수 있습니다
- 금강대협곡, 기암괴석등
하산 후 통화로 이동 (약 4시간 소요)
통화도착 후 석식
호텔투숙 후 휴식

통화 SOUTHERN CHANGBAI EXECUTIVE HOTEL 또는 동급 (2인 1실)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4일 2024년 10월 15일 (화)

통 화


심 양



인 천
 

전용차



KE 834
05:00
06:00
07:00
12:00
13:00
15:00
16:50
20:00
기상
호텔조식
통화출발 심양으로 이동 (225Km,약3시간30분소요)
심양도착 후 중식
요녕성 박물관 관람
공항도착 후 출국수속
심양국제공항 출발 (약 2시간10분소요,시차1시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도착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기내식

단동(Dāndōng)

옛 이름은 안둥이었으나, 1965년 개명하여 단동 또는 단둥이라 불리며, 압록강 하구부의 신의주 대안에 자리하여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된다. 원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07년 개항장이 되었고, 3년 후 일본의 대륙진출 문호로서 발전하였다. 항구는 흘수선이 3m인 배까지 입항이 가능하며, 목재·콩·콩기름 등을 수출한다. 부근 구릉지대에서 생산되는 작잠사를 원료로 하는 견직물 공업 외에 제지·비누제조·철강·기계 공업이 활발한 지역이다. 

압록강유람선

한반도와 중국 만주벌을 사이에 두고 장장 802km를 흘러내리는 압록강은 국경 경계선으로 단동과 신의주, 지안과 북한 만포시의 경계이다. 단동시 남쪽 압록강변에는 압록강을 돌러볼 수 있는 유람선 선착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와 중국의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해서 황해로 흘러 들어간다. 압록강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의 연락로로 이용되어 왔으며, 멀지않은 강 건너에 보이는 곳이 바로 북한 지역이다. 여름철에는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빨래를 하고 있는 부녀자들의 모습, 20세도 채 안된 앳된 모습의 국경수비대들이 강길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호산장성

호산장성은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 만족 자치현 후산 진에 위치한 유적이다. 장성 유적의 인근에서 주민들에 의해 발견된 석산이 드리워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석산은 고구려의 성인 박작성이 철거되어 생긴 석산이다. 호산이란 의미는 "멀리서 보면 호랑이가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호산"이라고 한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경을 둔다. 현재는 장성 유적을 산책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 있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 풍경 중 최고로 뽑히는 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에서 "천지"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원형을 띠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0㎢, 호수 주위 길이가 13㎞, 평균수심이 204m 정도입니다. 천지는 옛부터 안개가 많고 1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습니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천지의 물이 흘러 장백폭포와 온천을 형성하며, 또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천지를 닮은 작은 호수가 있어 '소천지'라고 불립니다.


백두산 천지의 기후는 불규칙하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자주 발생해서 여행객들이 맑은 날에 천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금강대협곡(서파)

동양의 그랜드캐년, 대협곡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해 분출된 용암이 흐르면서 생긴 V자 계곡과 함께 다양한 모양의 기묘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금강대협곡은 폭 200m, 깊이 100m 그리고 길이 70Km로 백두산 서파 관광의 또 다른 묘미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서파코스의 3분의 1 정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관광로를 걷다 보면, 특이한 나무가 다양한 모양으로 우거져 있는 숲길의 산책로를 지나 웅장한 장관의 V자 협곡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길에서 금강 대협곡의 경치를 관광할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은 각자 모양에 따라 이름이 있어 관광의 재미를 더하기도 합니다. 금강대협곡의 관광을 위해서 만들어진 길을 통해 천혜의 원시림과 함께 순수한 자연과 새소리를 들으며 산림욕을 즐겨보세요.

심양(Shěnyáng)

춘추전국 시대에 연나라가 후성을 설치하고 한대에는 요동부에 속했으나 후에 고구려가 점유, 당 초에는 다시 중국영토가 되어 심양이라 불리웠다. 심양은 요녕성의 성도이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최대도시이다. 1625년 누루하치가 세운 금나라부터 만주제국에 이어 청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서 번성하였으며, 북경으로 수도가 이전된 후에도 중국의 두번째 수도로서 동북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시의 내외에 남은 유구로는 서쪽 교외 탑만에 있는 무구정광사리불탑, 구소북문 밖에 있다가 근년에 도괴된 숭수사백탑등 팔각다첨탑이 있고, 고궁 앞 가로에 있는 다라니경 석등도 알려진 것이다.

요녕성박물관

선양 시정부 광장 앞에 있다. 원래는 펑톈군의 주요 인물로 러허성의 주석이었던 탕위린의 관저로 사용되던 곳이며, 일본이 만주전쟁으로 둥베이지역을 장악한 뒤 국립중앙박물관의 펑톈 분관으로 삼았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국립선양박물관으로 바뀌었으며, 1948년 선양이 해방된 뒤 둥베이박물관이 건립되어 1949년 7월 7일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역사문물과 고대 예술품을 주로 소장한 역사예술박물관이다. 서화와 자수, 판화, 동기와 도기, 갑골, 칠기, 조각, 복식, 화폐, 비지, 고지도, 소수민족 문물, 혁명 문물 등 17종류 11만 2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광개토대왕릉에서 출토된 태왕전 등 고구려와 관련된 유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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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압록강국제마라톤참가기문홍규(2016-06-20)
      오바! 짜요!!

      모름지기 여행이란 누구와 함께 떠나느냐가 중요하다.
      해외마라톤대회에 첫 참가하여 완주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명소를 관광하면서 주고받는 대화나 한 잔의 술이 신선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법하다.


      한라에서 백두까지에서 이름을 딴 한백마라톤클럽은 윤강원회장의 추진으로 지난 일 년 간 푼돈을 모아 에스앤비투어가 주선하는 3박4일의 마라톤 여행을 떠난다. 창설 초기에 한라산을 등정하고 꿈같이 여겨지던 백두산탐방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5월 28일 김해공항 집결시간이 6시30분. 짐을 부치고 출국신고를 하고 심양 발 게이트를 통과하기까지 몇 가지 신상 털기 절차가 있었다.
      8시 반 출발에 소요시간은 두 시간 남짓, 날씨는 쾌청했다. 비행기 날개위로 하얀 반달이 하늘 길을 같이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하늘을 날고 있을 때인 10시 14분 외교부에서는 웹 발신으로 북한 국경지역 여행 유의, 북중 접경지역 방문자제, 신변안전 각별유의, 해외 위급상황시 영사콜센터안내 등의 문자를 동시다발로 날리고 있었다.
      이미 기체는 하늘에 떠있어 물리적으로 회항할 수 없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해외참가자가 위해를 당한다면 중국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북한인들 자기네들 선수까지 보내놓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호랑이 코털을 건드렸다가는 망신살이 뻗친다는 건 모를 리 없다. 우리도 개별행동을 피하면서 조심하면 된다.


      내게는 믿는 구석이 따로 있다. 쓸모없는 (그들의 표현대로) 로인을 잡아 갈리는 없겠거니와 오십대로 착각하여 붙잡아가더라도 실제 나이와 출생지가 밝혀지면 그들은 대외 선전도구로 삼아 고향 방문에다 용구, 필구라고 이름만 들은 고종사촌형을 상봉시키는 이벤트를 벌인 다음 인도적인 사업이라는 포장을 하여 조기 송환할 것이다.
      (양친은 경북 경산태생이나 생활이 궁핍하여 1942년 만주로 가던 중 강원도 세포산골에 안착하였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 밭을 일구고 화전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나를 낳고 이듬해 8. 15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낯선 곳에 왔어도 하나 낯설지 않고 눈에 익숙한 산하가 펼쳐진다. 심양에서 단둥으로 달리는 길 양쪽에 도열해 있는 포플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마치 어릴 적 고향산천을 달리는 기분이다.
      그 시절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로수는 포플러였다. 신작로에 빽빽이 줄지어 있거나 동네 어귀나 들판에 우뚝 솟아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포플러가 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는데 중국으로 집단 이주해 버린 사실을 여기 와보고 알았다.


      6, 25전쟁 통에 나온 유행가 백설희의 즐거운 목장을 들어보셨는가.
      널따란 밀짚모자 옆으로 쓰고 휘파람 불며 불며 양떼를 몰고
      포플라 그늘에 앉아쉬면 종달새는 비비베베
      노래를 불러라 불러라 젊은이의 노래를
      저 멀리 산마루에 타오르는 흰 구름도 춤을 추누나.
      매미소리 자지러지는 여름날의 포플러는 암울한 시대에도 경쾌한 노래가사처럼 낭만이 서린 추억의 나무다.


      소년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높이 가맣게 치솟은 포플러를 우러러 보았다. 우듬지 끝에 걸려있는 뭉게구름과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꿈을 키웠다. 포플러는 꿈을 먹고 자라는 꿈나무였다.
      미루나무, 백양나무라고도 부르는 포플러는 성장이 빨라 30미터이상도 자란다. 윤기 나는 무수한 이파리가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햇볕에 굴절되어 유난히 반짝이고 깃발 펄럭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향기와 치톤피드를 다량으로 발산해 대기정화에도 탁월한 나무다. 까치가 별나게 이 나무를 좋아해 층층으로 집을 지었다.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의 여파인가?
      그때 전방관측에 장애를 주는 미루나무가지를 치다가 북한경비병이 휘두른 도끼에 미군 두 명이 희생당한 아픈 역사가 있다. 하여간 산업화시기에 접어들고부터 우리나라는 포플러를 푸대접했다. 도로를 확장하면서 마구 베어내고 수종을 갈아치웠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종달새도 사라졌다.


      중국은 어떤가.
      일찌감치 돈이 되는 줄 알고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심고 가꾸었다. 중국인들은 포플러로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수출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제지와 펄프, 합판을 생산하면서 다목적으로 상업화에 성공하였다. 곳곳에 조성되어 있는 묘목단지를 보고 어림짐작으로 하는 소리다. 어떨까. 우리가 지금이라도 이들을 다시 귀화시켜 경제림으로 육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압록강 철교 바로 앞, 김정일이 묵었다는 중련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이 대주점으로 적혀있어 한문 풀이대로 규모가 큰 술집인가 했는데 주점이 호텔이란다. 어떤 곳은 한글로 호텔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압록강유람선에 올라 철교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강변 너머 지척에 신의주가 침묵 속에 잠겨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한반도북단의 우리 땅인데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와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중머리같이 빡빡 깎아버린 민둥산을 보면서 인민들의 고달픈 생활에 마음이 아렸다.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람을 보고 손을 흔들다가 공연히 자극할 수 있겠다 싶어 말았다.


      압록강철교는 원래 두개였다.
      하나는 그들 표현대로 항미원조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져 복원하지 아니한 단교이고 온전한 모습인 다른 하나는 중조우의교라는 다른 이름표를 달고 한반도의 비극을 상징해 주고 있다.
      남침한 북괴군을 밀어붙이면서 압록강까지 진격해 올라온 한미연합군은 남북통일을 코앞에 두고 이 다리로 중공군이 꽹과리 치며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가는 바람에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이로부터 한반도는 강대국 틈에 끼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분단의 역사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고구려 때 확장한 그 광활한 만주벌판의 영토를 다 잃고 남아있는 한반도마저 삼팔선으로 쪼개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풍산개와 진돗개가 육십년 이상을 으르렁 거리는 형국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정권은 핵으로 자유세계를 협박하는 불장난을 포기하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동상을 용광로에 녹여 그 돈으로 쌀을 팔아 인민에게 선심을 베풀면서 천지개벽하는 중국의 굴기를 본받아 개혁과 개방에 힘쓴다면 장차 통일된 한국은 선진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신의주 쪽 압록강변에는 숲속에 민가로 위장한 초소들이 늘어서 있고 위대한~, 경애하는~, 선군조선의 태양~이라는 수사를 붙여 김씨 왕조 3대를 찬양하는 붉은 글씨의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있었다.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인 호산장성 가파른 계단 길을 올랐다. 아카시아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뻐꾹새가 허기지게 울었다.


      첫날밤, 압록강철교가 바로 앞에 보이는 6층 명당을 차지한 회원 방에 모여 YaLu River(압록강)라는 상표의 맥주를 마시며 이국의 정취를 즐겼다.
      듣던 대로 강 건너 신의주는 초저녁부터 깜깜한 암흑천지다. 낮에 본 민둥산이 떠올라 씁쓸했다. 인민들은 두더지 같은 노예생활을 하면서 강 건너 중국 땅의 고층 빌딩에서 뿜어 나오는 화려한 불빛을 보고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새벽 압록강변을 산책하였다. 시차가 한 시간이 늦어 적응할 것도 없다.
      제니와 미쉘이 벌써 조깅을 마치고 한백 유니폼차림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번 대회를 위하여 보스가 특별 제작하여 기증한 태극마크에 한반도가 새겨진 붉은 유니폼은 컬러와 디자인이 뛰어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국선수들이 같이 사진찍자고 서로 끌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무덥고 시민들의 응원열기도 뜨거웠다.
      그들이 합창으로 짜요, 짜요(힘내, 힘내) 라고 외치면 우리도 맞받아 짜요. 짜요 화답했다. 맞아, 당신네들 음식이 대체로 짜요. 짜드라구요.


      강 건너 신의주를 보고 뛰느라 왼쪽으로 돌린 목이 뻣뻣했는데 반환점을 돌아올 때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뛰니 원상으로 돌아왔다.
      공안경찰이 쫙 깔렸다. 이런 철통같은 경계 속에 무슨 허튼 짓을 할까 싶어 긴장되지도 않았다.
      에스케이 마크가 선명한 아파트를 보고, 국산자동차도 보았다. 북한가곡이 흘러나오고 한복을 차려입은 미녀들이 문 앞에 서 있는 북한 식당을 여러 개 보았다. 한산했다.
      뭐가 다른가. 남쪽과 똑같이 모터보트가 강물을 가르며 질주하고 숲에서는 홀딱벗고새가 웃어대고 길가에 노란 민들레가 피고 버드나무에서는 꽃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날이 너무 더워 온몸에 물을 마구 뿌렸다. 운동화가 질퍽였다.
      간식대에서 봉사하던 여학생들이 태극마크를 알아보고 오바! 짜요! 파이팅! 하고 외친다. 오빤 강남스타일을 듣고 오바로 발음하는 것 같다.
      내가 무리하게 풀에 집착하는 것은 주변을 고루 살피며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가슴에 담아 글감으로 남기고자 하는 버릇 때문이다.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길림성변방을 향하여 달렸다. 나는 거대 중국의 발전상이나 낙후성은 당초부터 관심 밖이다.
      가도 가도 푸른 숲과 옥수수 밭이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손으로 모를 심는 것을 보니 향수가 살아난다. 마치 대한늬우스를 보는 것 같았다. 기후 탓인지, 먹이사슬 때문인지 우리나라 들판에 그 흔한 백로가 보이지 않아 약간은 적막해 보였다. 중국 개구리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산간지대를 몇 시간이나 달려 통화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다.


      중국에서는 쫌 갑니다 하면 보통 너덧 시간이 보통이고 다 왔습니다 하면 아직 한 시간쯤 더 가야 한다니 천천히, 느리게 가 체질화된 만만디족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실감나게 들렸다.
      2호차의 이춘화 가이드는 간명하게 해설하고 전달력이 뛰어난 강한 악센트가 매력이었다. 중국이라는 곳은요. 원래가 그래요. 음~뭐랄까.


      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없어 신청하지 않았는데 미쉘이 슬쩍 이름을 올려놓았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침대가 놓인 룸에 들어갔다. 엉뚱한 상상을 했는데 칸막이도 없고 야릇한 손길도, 거친 숨소리도 없었다. 다들 시원하다고 하지만 아프기만 하고 빨리 끝났으면 싶었다. 내가 “아푸” 하자 마사지 걸이 한국말로 “아파? 살살 해?” 하여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심코 발을 보니 왼쪽 둘째 발톱이 삐쭉 나와 있었다. 이상하다. 출발 전날 깨끗이 깎았는데 빠트렸더라도 그렇게 긴 발톱이 있을 리 없다.


      멘포드호텔, 한자로는 만복특주점이다. 어저께 밤에는 대주점에서 자고 오늘밤은 특주점에서 잔다.
      우리 방은 3033호.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막강한 주력을 과시하는 주류파들이 이심전심으로 모여 3006 보스의 방을 접수했다. 45도의 고량주가 동이 나고 가져온 소주 스무 병이 상위에 올려졌다.
      새벽 4시에 모닝콜이 울리고 4시 반에 아침식사를 하기로 스케줄이 짜 있는데 2시가 넘어 해산했다. 그 와중에도 30분을 더 연장한 잔류파가 있었다. 그만큼 분위기가 절정이었다.


      복도를 돌아 내방으로 와서 문을 노크했다. 룸메이트는 훈남 류대장이다. 기척이 없었다. 깊이 잠들었구나. 벨을 누른다는 생각을 못했다. 아니 했더라도 요란하게 깨웠다가 나만 잠들고 그가 잠을 못 이룬다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약간 세게 두들겼으나 역시 반응이 없었다.
      방금 헤어진 영맨 김렬방을 찾았다. 비주류인 그의 아버지가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 관세음보살을 읊었다. “하룻밤 적선하쇼” 젊은이와 내가 서로 바닥에 자겠다고 우기는데 관세음보살이 자신의 침대반쪽을 내 밀었다. 이내 곯아떨어졌으므로 그 다음 상황은 까마득히 모른다.


      룸메이트는 2시까지 티브이 채널을 돌려가며 기다리던 중 깜빡 잠이 들었다가 퍼뜩 눈을 떠보니 3시였다. 불이 훤하게 켜진 상태이고 옆 침대가 휑뎅그렁하게 비어있다.
      아직도 판을 벌이나 하고 보스 방으로 갔다. 연거푸 벨을 눌렀는데 기척이 없다.(하필 그 벨이 먹통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옆방에 투숙한 하시스터즈를 깨워 합동수색작전에 들어갔다. 객실 복도에 쓰러져 자나 하고 길고 각이 진 복도를 샅샅이 훑고 비상구도 뒤졌다.
      괴한에게 납치되었거나 술에 취해 방 번호를 까먹고 이방 저 방 벨을 누르고 다니다가 얻어터져 어디 처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했다.


      4시 모닝콜소리에 벌떡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룸메이트가 문을 왈칵 열어젖히며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평소의 젠틀맨답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그때까지 잠을 안자고 걱정하다가 멀쩡하게 나타나자 안도하면서도 잠시 성질이 뻗쳤던 모양이다. 백두산이고 뭐고 다 치우고 잔다면서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베이스캠프까지 대여섯 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하니 차안에서 눈을 붙이면 된다고 달랬다.


      무장한 북한경비병이 중국으로 탈출하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강 건너서 망원경으로 마라톤 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동요를 일으킨 것일까.
      마사지를 하지 않고 먼저 숙소로 들어간 일행들은 샤워하는데 공안이 들이닥쳐 방안을 수색당하는 소동을 겪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검문소를 지날 때 버스에 올라 훑어보는 공안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장백산은 멀기도 했다. 한나절을 좋게 달려 숲속에 있는 강원도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셔틀 버스를 갈아탔다.
      하얀 둥치의 자작나무군락 숲속에는 투명한 햇살이 지상으로 내려앉아 흙과 수목에서 뿜어내는 정기와 어우러져 더 없이 청량했다. 고사해 쓰러진 죽은 나무뿌리를 뚫고 2세의 새 나무가 자라는 신비를 보았다. 장백산 다람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440개의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는 서파의 등산로는 완만하여 오르기가 수월했다. 계단 양쪽에 쌓인 눈이 키 두세 배 높이로 설벽을 이루고 있었다. 고산이라 오르는 동안 기압차이로 몇 번의 귀가 틔어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해발 2470미터. 거기까지였다.
      평생에 못 볼 줄 알았던 백두산에 오르고 보니 감개무량하다. 이 말은 평생 아껴 두었다가 오늘 같은 날 처음 써 먹어야 한다.
      도화지가 귀한 초등학교 이삼학년 때다. 형의 졸업장과 표창장 뒷면 백지에 크레용으로 천지를 그렸다가 호되게 야단맞았다. 그때 머릿속에 입력된 짙푸른 천지를 이렇게 두 발로 올라 바라보다니.
      변덕스런 일기로 백번을 올라야 두 번 정도 볼 수 있다는 백두산 맑은 천지를 우리는 단번에 보았다. 누구의 공덕일까.


      5월 마지막 날, 저 아래는 푹푹 짜는 한여름 날씨인데 백두산 천지는 한겨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최근 첨예하게 대치하는 남북관계처럼.
      우리 한백은 드디어 로고대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목표를 달성하였으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 하루 빨리 남북이 화해하여 자유롭게 내왕하게 되면 맨 먼저 평양국제마라톤대회에 한백 이름으로 단체 참가할 수 있기를 민족의 영산 앞에서 기원해 본다.


      유월이 지나야 해빙이 된다니 파도가 출렁이는 천지를 보지 못하고 칠팔월에 절정이라는 야생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고 손이 시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인력거가 대기하고 있었다. 왕복 한 행차에 십 만원이라고 들었다.


      하산하여 금강대협곡을 돌아보았다. 까마득한 절벽 밑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화산분출로 생겨난 협곡에는 풍화작용으로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서 있었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화산재가 흩날리다가 내려앉는다. 무슨 현상일까? 우리나라 숲에는 어딜 가나 칡이나 담쟁이 같은 기생식물이 큰키나무를 마구잡이로 휘감고 기어올라 숨통을 조이는데 여기서는 그런 반칙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엄존하고 있음을 보았다.
      청정무공해산소로 샤워하면서 힐링 한번 잘 했다. 일행들의 얼굴은 만족과 행복감으로 팽창되어 있었다.


      수상하던 발톱은 압록강전투에서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는데 마사지 때 받은 이차충격으로 유체에서 막 이탈하는 중이었다.

      ( 2016년 압록강마라톤 참가자 한백마라톤 문홍규님)
    2. 2015 압록강마라톤참가기박태희(2015-06-17)
      일년전부터 압록강마라톤에 참석하려고 지인들과 계획을세워^^^
      오늘이그날, 압록강을보며. 건너북한의 위화도를 바라보면서 출발신호..

      첫발을 힘차게 반화점을 향해달려간다.날씨도 너무좋고 대회를 준비한
      중국단동시와 에스앤비투어 이인효사장님 조성훈 부장 비롯 임직원께 감사드립니다.

      무더운날씨에도 달리는마니아를 위해열심히 응원해주는 중국시민들 북한에서나온 북한의 여성들
      반갑습니다 우리가슴에 태국기보고 통일통일하고 외치는모습 아직도 눈과귀에 선하다.

      보스톤, 동경, 베를린을 다녀왔지만 이번처럼 북한을 보면서 뛰어서인지 마음이 찡하다.
      시간이 주어지면 다시뛰어보고싶다. 에스앤비투어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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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2 제7회단동압록강국제마라톤대회 이모저모이철의(201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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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단동 압록강 마라톤 및 백두산 탐방기(2편)박용일(2012-07-11)
      단동 압록강 마라톤 및 백두산 탐방기(2편)
      단동에서 백두산 천지를 향하여

      7. 관전만(주)족 자치현을 지나 환인으로
      단동서 백두산을 향해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오늘 (오후)은 단동시 환인(환런)지나 통화까지 가는 여정인데 1차 목표지인 환인까지만도 170여km인데 끝없는 산길을 뚫고 난 길이라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호산산성을 뒤로 하고 철조망이 쳐진 압록강변을 20여분 달렸을까 낮은 산 언덕에 복숭아 과수원이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었고 압록강은 갑자기 바다와 같이 넓어져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이곳은 댐을 막아 수력발전소를 운영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이 넓은 압록강에 댐을 건설할 생각을 했을까 의아스럽고 우리 4개강의 수많은 수중보들 생각이 났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개발이란 이름아래 자연을 무참히 죽이는 이 업보가 오늘날 이상기후등으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음을 이젠 아무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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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여행 도중 곳곳에 수많은 댐(수고 水庫)들을 보았는데 환인 집안등 고구려 무덤등 유적지들도 깊은 물속에 잠긴지 오래되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은 장전하구 부근에서 압록강을 벗어나 북동쪽으로 관전 만주자치현 소재지로 향하여 계속 철길과 나란이 달렸는데 지도를 보니 이 철길은 북한 평안북도 삭주, 수풍에서 건너와 본계, 심양등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관전은 만족자치현으로 이전에는 만주족이 90%이상 살았다는데 현재는 한족이 대거 이주하였고 문화대혁명이후 만주족의 전통문화가 많이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만주족은 여진족의 별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진족은 금 (후금 포함), 청을 건국하여 서방, 일본 제국들에 망하기 전 중국을 지배한 막강한 민족입니다.
      금은 흑수말갈에서 나온 생여진 출신의 불세출의 영웅 아골타가 1115년 두만강변 산지를 근거로 세운 국가입니다.
      그런데 금나라 시조가 고려 출신이란 사실은 금의 정사인 금사나 우리의 고려사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청대의 만주원류고에도
      `신라왕의 성인 김씨는 수십세를 전해졌으므로 금나라가 신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호를 금으로 한 것도 신라 왕실의 성을 따른 것이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골타의 선조가 신라의 왕족으로 신라 멸망 후 고려초 여진땅으로 들어 갔을 가능성이 높고 마의태자(김일 金溢)를 시조로 하는 부안 김씨 족보에는 고려사에서 아골타의 선조일 것으로 조사해 놓은 김행(幸)를 마의태자의 아들로 기록해 두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청을 일으킨 누르하치도 국호를 후금이라 하여 금을 이은 것을 분명히 하였는데 누르하치는 백두산 북쪽에 근거를 둔 건주여진의 족장이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조선과 명의 국력이 약해져 여진을 토벌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여진족을 굴복시켜 후금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누르하치의 가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인데 아골타 선조의 고향인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여진족은 이후 청황실의 중국화로 국경등으로 이주한 여진족 후예는 대부분 중국사람이 되었고 고향에 있던 사람들은 남아서 만주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요서와 요동 곳곳에 살고 있으나 이미 대부분 만주족의 말과 글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유일하게 만주어와 만주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신강 자치주 찰포 사이에 8만여명의 석백족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청이 러시아 공세를 막기 위해 이주시킨 만주의 여진 8기 일파의 후예들이라고 합니다.
      (`발로 쓴 反 동북공정 454-461쪽 여진족은 우리민족이다 편)

      우리와 이렇게 밀접한 만주족들이 모여사는 만족자치현은 이곳 관전에서 가까운 곳만도 본계(번시 本溪, 서북쪽), 환인, 신빈(新賓, 북쪽)이 있고 신빈에는 옛 고구려현이 있던 곳이라 환인과 더불어 더욱 애착이 가는 곳입니다.

      이곳 관전은 조선 광해군때 명나라의 요청을 받고 후금과 명나라의 명청전투에 파병된 조선군 진격로이며 부차령(고려 팔도령)에서 선천군수이던 조선장수 김하응이 누르하치의 후금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곳입니다.
      당시 광해군은 강홍립장군에게 누르하치에게 주는 개인 서신과 전투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에 가담하라는 2개의 밀서를 주어 강홍립은 후금군과 싸우지 않았는데 김하응은 장수답게 싸우다가 장렬히 죽은 곳이라 정치지도자의 정세판단과 전장에서의 장수의 어려움을 생각케 하였습니다.

      길양옆은 옥수수 밭의 연속이고 집집마다 고구려시절부터 내려온 부경이란 창고가 보였는데 지상에서 1m정도 높이에 마루를 깔고 옥수수를 저장하여 금방 눈에 띠었습니다. (고구려 발해역사기행 103-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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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고구려 첫 도읍지 환인에서 통화로
      밤늦게 혼강변의 환인에 도착하였는데 고구려 시조 주몽이 북부여의 왕자 부소에게 쫓겨 산간벽지인 이곳에 30여년간 첫도읍지삼아 살았던 곳인데 원래 이곳은 졸본부여땅으로 주몽이 재력가인 과부 소서노의 도움으로 고구려를 세운 것입니다.

      이곳 만족자치구는 청나라의 출발점이기도 한데 이곳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의 헤투하란 (영릉 永陵)이 누르하치의 후금 첫도읍지이기 때문입니다.
      2년전 이곳에 왔을때 청나라 건국 기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널려 있어 의아해 했는데 지금도 인구 30만명 중 절반이 만주족이고 우리 중국동포는 1만명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지명 환인은 단군의 할아버지(天帝. 하늘님)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고구려인들도 고조선 즉 단군의 후예임을 들어내고저 지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환인에는 평지성인 환인성(하고자성)과 산성인 오녀산성이 있는데 2년전 와 본 환인성은 강가의 토성으로 성벽 잔해만 남아 있었으며 오녀산성은 당시 눈 때·문에 직접 가볼 수 없어 산성 아래서 쳐다만 보았는데 환인 중심가에서 10여리 떨어진 동가강(혼강의 지류)절벽을 이용하여 웅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 동가강은 북쪽으로 가면 혼하의 지류인 소자하를 만나므로 이전부터 북쪽의 혼하의 심양·무순과의 교역로로 이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밤늦은 시간 중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우리를 접대하는 만주족인 듯한 예쁘장한 여종원이 중국인 주인에게 손님인 우리에게 물 심부름을 잘 못한다고 야단을 맞는 것을 보니 밥맛이 반감되었습니다.

      환인에서 오늘의 목적인 통화(通化 퉁화)까지의 길도 혼강 상류를 거슬러 난 험한 산 길로 요녕성과 길림성 경계를 넘어 가는데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사는 산골 마을은 일찍이 불이 꺼져 있었고 초롱한 상현달이 또렷한 별들과 함께 산하 대지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머리 위 북두칠성과 서편의 찬란한 목성이 우리의 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곳이 주몽등 초기 고구려인의 활동무대이고 일제시 독립투사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곳이라 생각하니 주위 산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9. 혼강가 통화에서 백산, 송강하 거쳐 민족의 성산 백두산으로
      자정이 넘어 통화에 도착 역전의 수수한 빈관에 드니 기적소리가 계속 요란하여 쉬이 잠을 들지 못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빈관서 역구내를 내려다보니 이곳이 철강, 의약등 산업도시이자 물류 중심지이고 교통의 요지임을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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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일제시 초기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북쪽 유하현에 이시영 이범석등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서로 군정서를 지휘한 곳이기도 합니다. 남쪽의 압록강변 집안시를 거쳐 북한의 자강도 만포, 강계로 기차가 다니니 생각보다 북한과 다시 가까이 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대망의 백두산에 올랐다가 집안까지 돌아올 긴 여정이라 새벽 5시경 일어나 6시경 서둘러 떠났는데 부처님 오신 날이라 목에 건 티베트제부처님을 모시고 마음속으로 반야심경을 읊으니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관 앞 길가 과일노점에서 체리와 산딸기를 잔뜩 사서 하루종일 심심찮게 먹었습니다.

      통화에서 동북쪽에 위치한 백산을 향하였는데 혼강을 따라 난 길은 줄곧 철길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고 아침 햇살이 혼강에 찬란히 비추고 주위의 산들이 계속 둘러 싸고 있어 너무나 상쾌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백두산 서파코스는 지난 10여년전부터 중국이 집중적으로 개발해 온 곳인데 저는 이코스를 연 다음해 환경운동가들과 야생화전문가 김태정선생과 처음 온 이후 다시 찾아 온 오는 길이라 감회가 새로웠고 큰 변화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연변서 떠나는 북파코스는 조선족 연변 자치구에서 관리하여 왔으나 이곳 서파는 행정구역이 같은데도 길림성 정부가 직접 관할하면서 대대적으로 개발하여 백두산 관광을 북파가 아닌 서파로 그 중심을 옮겨 우리들과 중국 동포들을 견제할 속셈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백산이나 무송현은 만주에서도 오지 중 오지였는데 백산입구에서부터 백산임업구등 대형간판을 세워 임업등 산업중심지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한글로 백두산 휴게소라 적힌 중국동포들이 운영하는 휴게소에 들려 웅담 2캡슐(1.5만원) 버섯과 지도·수건등을 사면서 서로의 정을 조금이나마 나누었습니다.

      길은 계곡 녹음속을 달리며 백산산맥을 계속 올라 고도를 서서히 높혔는데 무송현, 송강하(진)들은 온통 아파트 호텔등 대형건물을 짓느라 어수선하나 매우 활기가 넘쳤고 곳곳에 도로확장 공사등으로 차 행열이 늘어서 있었으나 이전보다는 도로 사정이 훨씬 좋아져 이곳은 더 이상 오지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지나는 이 길도 우리 조상들이 활동하는 곳으로 일제하 독립군은 물론이고 옛 고구려 발해 군사들이 다니던 곳인데 이제는 중국이 백두산 등산 및 스키등 관광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으니 엄청난 변화가 불어 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송강하에서 10시경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번듯한 큰 식당에 대형 백두산 천지 사진이 인상적이었으며 이곳에 공항을 만들어 장춘, 심양등에서 수시로 비행기가 오가고 있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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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길 곳곳에 `장백산국제도가구`(度假區 리조트) `세계일류 산지도가 체험지`라는 대형 간판이 늘어 섰고 스키장도 만들어 중국스키대표선수들은 물론 전세계스키어들을 불러들여 전천후 관광지로 만들어 적어도 동북아의 알프스를 꿈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던 백두산 화산 폭발은 이곳에선 완전히 남의 일 같았는데 중국의 이런 갑짝스런 개발성장은 "빨리" 살아온 우리에게서 배운 것 같아 씁쓰레 하기도 하였습니다.

      10. 새하얀 백두산과 천지에 올라
      송강하에서 1시간여 자작나무등 울창한 숲속길을 달려 백두산 서파입구에 도착하여 셔틀뻐스로 갈아타니 드디어 백두산에 온 것이 실감났습니다.
      첫 방문시는 초대소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새벽 부근 계곡에서 벌거벗고 목욕재개도 하고 거의 한나절 걸어서 서파로 오른 것을 생각하면 이번 여행은 차로 쉼없이 일사천리로 내달리고 있어 이 감격을 제대로 느낄 여유조차 없어 무진 서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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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이곳에 눈이 내렸다고 하여 단동서부터 걱정이 많이 되었다가 오늘 산에 오를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고 역시 백두산천왕님께서 우리를 반겨 맞아 주시니 서파에 올라 백두연봉과 천지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버스 맨 앞 좌석에 앉아 빼곡한 숲길을 지켜 보려니 숲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조차 들었고 얼마나 지났을까 숲이 낮아지면서 드디어 천상화원으로 접어들었는데 계절이 일르고 올해는 날씨도 추워 야생화를 볼 수 없어 너무나 서운하였습니다.
      이전에 왔을때는 이곳에 온통 갖가지 야생화들의 천국을 이루었고 길도 따로 나 있지 않아 맨발로 거의 종일 걸어 다녔느데 이번에는 자동차로 휙 지나칠려니 그때의 환상적인 기억이나마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자꾸만 백두산 정상을 달려가고 있는데 어느덧 숲 사이로 왼쪽부터 록명봉(지반봉) 백운봉(망천후) 청석봉(옥주봉) 제운동 와훈봉 관면봉등 눈이 쌓여 하얀 백두의 웅자가 일렬로 서듯 모습을 들어내니 가슴은 저절로 뛰기 시작하였고 카메라 샤터를 계속 눌러 냈습니다.
      지그재그로 고도를 높이며 낮은 관목 숲 지대도 지나니 뒤로는 저 아래의 만주 산하가 펼쳐져 보였고 앞으로는 굽이 굽이 도는 길 곳곳에 눈 더미가 쌓여 있으며 백두의 웅자가 선뜻 닥아 섰고
      서파 정상으로 향한 길도 보이니 이제 드디어 백두의 품에 안긴 것 같았고 한시라도 빨리 저 정상에 서고 싶은 조급증이 났습니다.
      어쩌면 날씨가 잔뜩 찌푸린데다 정상의 날씨가 변화무쌍함을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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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파 정상이 청석봉과 제운봉 사이로 저만치 보이는 종점에 내려 서둘러 나무 계단길을 쉼없이 올랐는데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간간히 앞 뒤로 펼쳐진 장대하고 신비스런 풍경을 카메라에, 아니 가슴에 담아 보았습니다.
      이전에는 저 아래서 계속 걸어 오른 청석봉 정상으로 이어진 긴 능선과 호랑이등 같이 생긴 유명한 호배능선도 보면서 잠시나마 추억에 잠겼습니다.
      1200여개의 계단을 20여분만에 올라 드디어 안부인 서파 정상에 서니 온통 산하대지가 새하얀 신설로 덮여 있어 너무나 신선하고 신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백두산의 최고봉인 백두봉(장군봉 병사봉)을 비롯한 2500m이상의 18개 봉우리가 제각각의 힘찬 기상으로 둘러선 그 품에 새하얀 천지가 조용히 잠들듯 누워 있어 푸근한 기분을 안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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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 수교하기 전해인 1991년 고 정주영회장등 천지동우회 회원들과 처음 이곳에 온 이후 여러차례 백두에 올라 천지를 보았지만 이렇게 얼음과 눈에 덮힌 흰 천지는 처음 보니 전혀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고 당장에라도 전 웅장한 봉우리들을 한바퀴 돌며 얼싸안고 싶고 천지에 내려가서 뒹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10여년전 여름 북파코스로 이른 새벽 혼자 몰래 천지에 올라 오랫동안 천지물에 몸을 담그고 백두한아버님께 한반도 평화통일을 빌고 또 빌던 때의 감동이 다시 살아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일찌기 조선조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님은 백두산을 `곤륜(崑崙)산의 한 갈래가 동으로 뻗어 오다가 요동의 큰 들에서 엎드려 기운을 모아 동해에 닿는 곳에서 신령스럽고 숭엄하게 고개를 들고 동방의 산의 조종(粗宗)이 된 것이니 조선과 만주가 이의 권속이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한반도의 등줄기가 되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백두대간도 이런 백두의 위상을 여실히 들어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근참기 서두에 백두산을 `동방원리의 화유(化囿)이고, 동방 민물(民物)의 최대의지요, 동방문화의 최요(最要)핵심이며, 동방의식의 최고연원이자 천산성악(天山聖岳)으로 신앙의 대상`이라 규정하며 이를 근거로 불함문화론을 주창한 것입니다. (제3편 `백두산에 오르고 집안들려 귀로에 듬`편이 계속됩니다.)
    5. 압록강 마라톤과 백두산 탐방기(3편)박용일(2012-07-11)
      압록강 마라톤과 백두산 탐방기(3편)
      백두산에 오르고 집안들러 귀로에 듬

      11. 백두산 국경비(북한)과 백두산정계비(조선)
      그런데 이런 우리의 성산 백두산이 더 이상 우리의 것만도 아님을 실감케 한 것은 바로 이곳에 서 있는 37호(종전에는 5호임) 국경비와 엉성한 경계줄의 존재였습니다.
      이 5호비와 경계줄은 물론 중국과 북한간의 국경비이며 경계표시인데 이전에는 경계줄이 경계비에 잇대어 있었는데 이제는 비에서 북한쪽으로 10여미터 들어가 있어 경계비 일대는 관광객들의 터전이 되어 있고 양국의 경비병들도 없어 겉으로 보기에는 이곳이 국경이란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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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5호비는 북한과 중국간의 21개 국경비중 하나인데 6호비는 5호비에서 천지를 가로 질러 동북쪽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북한쪽 천문봉부근에 있으며 중국 길림성 지도에는 5호와 6호를 잇는 직선을 천지를 분할하는 경계선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은 1962년 비밀조약인 조중변계조약에서 백두산 천지둘레의 2500m 이상 16개봉 중 9개를 중국쪽에, 나머지 7개만 북한에 속한 것으로 정하였고 위 천지의 경계에 대하여는 확실치 않으나 북한은 천지전체를 북한영토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경계비 1내지 4호는 북한쪽 관면봉에서 시작하여 서북방향의 와호봉 제운봉으로 연결되는 코스에 있습니다.

      위 경계비는 각 압록강 두만강 발원지점사이의 봉우리들을 따라 세워진 것인데 21호와 23호비는 북한측에서 두만강 원류로 지적하는 홍토수(洪土水)와 중국쪽의 각 뤄류허(弱流河), 무수린허
      (毋樹林下)의 합수지점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압록강·두만강을 기준으로 한 위 국경은 오래전부터 우리(조선)와 중국이 다투어 왔는데 소위 간도문제로 알려진 영토분쟁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712(숙종 38년) 세워 진 백두산 정계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청나라 강희제의 명을 받은 오라총관 (현재 길림성장 해당됨) 목극등이 두만강(중국은 토문강) 발원지의 현장을 답사하여 백두봉 동남쪽 4km 지점 현재 북한내에 정계비를 세웠는데 그 비에 두나라 경계를 ‘서위 압록(西爲鴨綠) 동위 토문(東爲土門)’이라고 기재하여 이후 우리는 토문이 송화강 상류인 토문강이라고 하고 중국(청)은 토문이 두만강이라고 주장하여 왔으며 중국은 아예 두만강이란 이름조차 쓰지 않고 토문강으로 명시하고 두만강변의 국경도시도 토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정계비와 함께 비에서 강발원지까지 흙과 돌로 담을 쌓아 두었는데 정계비와 토퇴, 석퇴(현재 북한내 위치함)를 따라가면 토문의 발원지는 송화강 상류에 있는 현재의 싼다오(三道) 우다오바이허(五道白河), 헤이스허(黑石河)로 추정되는데 싼다오는 김좌진 장군의 항일 전적지인 청산리에 가까운 곳에 있고 우다오바이허등은 산다오에서 남쪽으로 즉 백두산쪽으로 멀지 않은 곳입니다.

      12. 간도문제(레지선등) 백두산·천지영유권과 중국의 동북공정
      위 간도문제와 정계비 문제가 본격화 된 것은 1883년 (고종 20년) 서부경략사로 갔던 어윤중이 간도주민의 호소를 듣고 정계비와 토문강의 원류를 조사한 후 청에게 간도는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였고 청과 1885, 1887년 두차례 감계회담을 가졌으나 타결을 보지 못하였습닏.
      이후 일제의 강압적인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외교권을 빼앗겨 결국 1909년 일제는 청과의 소위 간도조약으로 두만강 상류인 석을수(石乙水)를 국경선으로 정하여 (동·북) 간도를 청국령으로 넘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계비가 세워지기 4년 전인 1708년 강희제의 명에 따라 프랑스인 선교사 레지(Regis)가 청과 조선의 국경을 실측하여 만든 프랑스 루이 15세 측근 지리학자 당빌의 새중국지도에는 양국의 국경은 압록강 두만강 경계를 훨씬 북으로 올라간 소위 레지선을 따라 설정되어 있어 동·북간도는 물론 서간도도 분명히 조선의 땅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위 토문강의 국경선이나 레지선은 아직도 살아 있어 장래 통일 한국의 국경은 달라질 수 있으며 중국은 동북공정등을 통해 역사적으로 만주를 터전으로 삼은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여 간도를 당연히 중국의 땅으로 굳힐려고 하고 있어 중국의 동북공정의 핵심은 결국 간도 영유권의 문제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두산의 영유권에 관련하여는 위 백두산 정계비를 설치한 목극등이 우리측 통역관 김지남등에게 백두산은 조선의 것임을 인정한 사실이 그의 기록 북정록(조선시대 선비들의 백두산 답사기 102쪽 김지남외 혜안)에 나와 있는데 1960년대 중소·중인 국경분쟁등을 계기로 중국과 북한간에도 분쟁이 있어 1962년 조중변계조약과 1960년대말-70년대 초반 조 중 국경하천협조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백두산과 천지의 양분이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백두산 식물생태-현지답사여행 예문동 차종한 저 160쪽)

      13. 육당의 대백두 대천지 탄덕문
      늦게사 올라온 일행들과 사진을 찍으며 1시간여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아쉬움을 안고 내려 오려니 자꾸만 천지와 연봉들이 아니 백두천왕님이 저를 붙잡는 것 같아 육당의 `백두산 근참기`의 마지막에 실린 `대백두 대천지의 탄덕문`을 조용히 읊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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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심으로 백두천왕께 귀명합니다.
      우리종성(種姓)의 근본이시며 우리 문화의 연원이시며
      우리 국토의 초석이시며 우리 역사의 포태이시며
      우리 생명의 양분이시며 우리 정신의 편책이시며
      우리 이상의 지주이시며 우리 운명의 효모이신
      백두대천왕전에 일심으로 귀명합니다.
      일심으로 백두천왕께 귀명합니다.
      .
      .
      . .
      그리고 이어지는 백두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육당의 아래의 글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통곡일 것입니다.

      한아버지, 집안어른께 귀근하는 것이매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한아버지 가지고 온것이 아주 없음은 아닙니다.
      제딴은 그 무엇보다 긴한 것을 가져온 꼴입니다.
      한아버지에게서 받자와 가졌던 피를, 그 피가 뛰노는 염통을
      오랜 신물(信物)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한아버지께 드리는 훌륭한 제물이라 생각하고서 가지고 왔습니다.
      한아버지! 제 제물을 받아 주십시오.
      이제부터의 제몸과 마음과 피와 숨은 온전히 한아버지의 제사 퇴선(退膳)입니다.
      한아버지의 이름으로써 이것이 모든 사람의 음복거리가 됨이 물론 저의 본회(本懷)입니다.
      한아버지! 한아버지를 뵈온 이눈은 다른 아무것도 다시 보지 아니하여도 섭섭할 것 없습니다.
      .
      .
      .

      위 ‘백두산 근참기’는 육당이 일제하인 1926년 조선교육회가 주최한 백두산 압록강 박물탐사단의 일원으로 서울에서 함흥-혜산진을 거쳐 백두산에 오른 약 2주간의 일종의 기행문인데 동아일보에 연재하여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 백두산 기행으로는 발군의 글인데 노산 이은상님도 그 언어의 풍요함을 격찬한 바 있습니다. (잃어버린 풍경 2(1920-40년)을 백두산을 찾아서 이지누 엮음 호미)
      그러나 육당은 안타깝게도 일제의 조선사 편수회에 들어가 친일 지식인의 대표자가 되어 버렸으니 식민지 지식인의 한계를 그대로 들어내고 있어 우리에게 삶의 큰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서파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서둘러 내려오면서 지도를 보니 북으로는 저 멀리 장백산맥이 그 먼 너머 우리의 선조들의 터전인 대흥안령 소흥안령과 흑요분수령이 펼쳐져 있고 남으로는 마천령 함경 산맥이 뻗어 있고 그 사이 광활한 개마고원 부전고원등 한반도의 지붕을 이루고 있음을 보니 이곳이 동방의 조종의 산임과 저 아래 펼쳐진 광활한 대륙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탑방한 대협곡의 놀라운 장관은 백두산 화산활동 즉 용암분출로 생겨난 것입니다. 백두산 일대는 지질시대 제3기인 2천만년-3백만년 사이에 6회, 290만년-13만년 사이에 1회 폭발로 각 만주 일대와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자연보호구(1800m)까지 사이에 현무암고원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폭발력이 큰 산성 용암을 분출했는데 산성용암이 점성이 높아 흘러내리지 못한채 높은 층상의 화산추를 형성하여 백두산은 1200-1000m의 현무암 대지 위에 1,150m의 높이로 솟아난 대규모 화산이고 천지는 100만년전 화산 활동으로 생긴 칼데라호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근 일대에는 지각의 파열대를 따라 지하 60km 밑에서 염기성 용암이 흘러나와 넓은 현무암 지대를 이루어 높은 것이라는데 조선 이조실록에 기록된 화산폭발것만 해도 1413년 7월, 1597년 8월, 1668년 4월, 1702년 4월의 네차례 있었다고 하며 1898년 러시아 탐험가 엔 게 가린의 기록에는 천지에서 가스와 연기가 나오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합니다.
      (백두산 식물 생태 백두산 형성편 85쪽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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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백두산에서 통화 거쳐 고구려 국내성의 집안으로
      백두산을 뒤로 하고 송강하, 무송현을 통화까지 왔던 길을 되짚어 오니 풍경들이 낯 익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송강하진에는 백두산 북파에서 발원하여 장백폭포를 지나온 송화강 본류가 흘렀고 무송현은 백두산 남쪽 장백조선족 자치현서 발원한 두도(斗道)송화강이 송화강과 만나는 곳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 송화강은 북으로 흘러 흑룡강이 되어 동으로 흐르다가 연해주에서 아무르강(러시아명)이 되어 동해로 흘러드는 것을 다시 생각하니 놀랍고도 신기했습니다.

      백산에서 통화로 오는 어둠속 길은 혼강과 철길을 같이 따라 왔는데 엊저녁 갈때와 같이 차창 밖으로 달과 별이 동무해 주었고 몸은 피곤했지만 백두산에 오른 감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정신은 초롱해 졌습니다.
      밤늦게 도착한 통화에서 서둘러 식사를 하고 발맛사지를 가자는 순진한 현지 가이드의 제안이 있었으나 밤이 너무 늦어 그냥 가는 대신 현지 가이드 팁을 만원씩 걷기로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통화에서 집안까지의 남쪽으로 산을 넘고 강을 따라 난 길은 어제와는 달리 새로 달려 보는 길이라 계속 창밖을 내다 보았지만 가끔 나타나는 산속 마을은 불이 꺼진지 오래고 강물에 서산으로 기우는 달빛이 비쳐 나그네의 심사를 달래 주었습니다.

      압록강변의 고구려의 고도인 집안에는 자정이 훨씬 넘어 도착하였는데 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라도 압록강에 나가보고 국내성에라도 다녀올 텐데 내일도 새벽에 출발이라니 참을 수 밖에 없어 몹내 아쉬웠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경 일어나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서둘러 단동을 향해 떠났는데 가는 길에 마침 시내 통구하 강가의 국내성 성터가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서너번 온 곳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귀한 우리 고구려의 역사 현장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집안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2대 유리왕부터 장수왕까지 425년간 도읍지로서 국내성과 산성자성(환도성)이 있는 곳인데 동천왕 고국원왕 광개토대왕의 애환과 영광이 깃들어 있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곳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만주지역의 뿌리가 되는 고구려의 중국화를 제일 먼저 하였고 이 지역의 고구려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하여 고구려의 정통성이 중국에 있는 것처럼 되었으니 애통한 노릇입니다.

      이곳의 유물로는 광개토대왕릉비, 장군총, 대왕릉, 무용총등 고분등이 있고 1만2천여기의 고구려 무덤은 대부분 댐으로 수장되고 말았으니 남의 나라에 맡긴 우리의 유물 유적의 운명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충주의 중원고구려비와 함께 우리고대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유물로써 이비에는 광개토대왕이 고구려의 시조 주몽(추모)의 17세손으로 나와 있는데도 현재 우리역사학계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주몽의 12세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역사학계는 주몽과 2대 유리왕 사이에 다섯왕이 더 있었다며 고구려 건국연대를 240년 정도 더 올라 가는 것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몽은 부루와 함께 부여의 해모수의 아들인데 고구려 6대왕 태조때 성이 해씨에서 고씨로 바뀌는등에 비추어 부여-고구려관계등 고구려 초기의 역사에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발로 쓴 반 동북공정 154-156쪽)

      14. 집안서 단동·대련의 천리길 달려 귀국길에 오름
      집안에서 단동으로 가는 길은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비교적 한산한 시골길이었고 주위의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연속이었고 가끔 높지 않은 고개를 넘는 산촌도 보였습니다.
      중간에 유림진을 지나 압록강에 가까운 읍내에 반가운 한글로 된 간판이 보였는데 전에도 들른 적이 있는 냉수(冷水)조선족향이었고 문화센터 같은 멋진 건물이 있어 들려 보고 싶었으나 갈길이 멀어 계속 가니 만주족 마을에도 만주풍의 센터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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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서 얼마 안가서 눈앞에 큰 혼강이 펼쳐져 있고 강 위로 대교가 우람히 서 있는 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길림성 집안에서 요령성 관전 만족 자치현으로 넘어가는 성경계였습니다.
      멀리 백산서 통화, 환인 지나 흘러 온 혼강은 여기서 곧장 조금 더 흘러 압록강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인데 압록강물은 일제시 건설하여 중국과 북한이 공동운영하는 수풍댐에 막혀 호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집안쪽 강위에 큰 장이 서서 북적대고 있어 버스로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혼강을 건너 만나는 강변공원의 작품같은 화장실에 들리고 저 아래로 유장히 흐르는 강물과 야생 오리떼들을 내려다보니 곧장 강변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습니다.

      혼강을 따라 산중턱을 깍아 낸 길을 계속 따라 갔는데 전망이 시원하였으나 강변산이 속살을 들어 내고 있어 큰 비라도 오면 산사태가 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혼강을 헤어진지 얼마되지 않아 거리에 시장이 선 하로하조선족이란 읍내를 지나쳐 평화로운 마을들을 1시간여 달리니 드디어 영전 진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엊그제 단동서 백두산갈 때 북쪽 만족자치현 소재지로 가는 갈림길에 있던 도시여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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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부터 단동까지는 오던 길이라서 친숙하였고 2-30분 후 다시 압록강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호산산성을 지나 잠시 잊고 있던 마라톤 주로를 따라 도착한 단동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곧장 대련으로 201번 고속도로를 따라 직행하였습니다.

      가이드 이창재님의 강권으로 부른 새신부 강보경님의 영화 미션에 나온 곡과 오솔레미오를 들으니 긴 여정의 피로가 싹 가셨고 차내 분위기가 격조 높은 흥으로 가득찼습니다.
      단동을 떠나 동항시를 지날 무렵 황금평이 다시 생각났는데 일제하인 1935년 아동문학가인 김우철님이 당시 일명 유초(柳草)도라고 부른 이 섬에 머물면서 지은 압록강 시를 읽어 보았습니다.

      백두산 천지 물이 넘쳐 흘러서
      동쪽으로 흘러가면 두만강의 물줄기
      서쪽으로 굽이돌아 흘러 내리니
      예가 천리 장강 압록강이외다.
      달밤에 이강을 건너는 나그네의 눈물과
      캄캄 칠야! 밀매꾼의 발자취 소리와
      안개 낀 새벽 뗏목군의 콧노래를
      귀담아들으면서
      산곡을 굽이 돌고 섬을 지나
      황해로 흐르기 몇 해던가?
      얄룹강, 얄룹강,
      흰 돛, 검은 듳을 싣고 흘러내리는 `아리나레`여
      내사랑하는 청년
      그대 오리강의 구슬픈 노래에
      두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는가?
      이 강가에 사는 수백만 백성들의
      가난한 생활 악보를!
      국경을 그림 그리며
      독사 꼬리같이 줄기차게 흘러내리는
      얄룹강, 검푸른 흐름이여!
      우리는 너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할
      삶과 죽음의 장강이라 부른다.
      (잃어버린 풍경 2(1920-40년) `백두산을 찾아서`, 이지누 엮음 호미)
      목적지인 대련공항에 도착하여 지난 3박 4일간의 일정을 돌아보니 퍽 오래되었고 마치 꿈속의 일같이 느껴졌습니다.
      동고동락한 일행들과 헤어짐이 못내 아쉬었으며 에스앤비 덕분에 뜻깊고 알찬 여행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한 마음이 새삼 샘솟았고 벌써 다음 마라톤 기행이 기다려졌습니다. 탐방기(1-3편)끝.

      후기: 중국서 귀국한 주말인 6. 2. 매년 참가해온 바다의 날 마라톤을 뛰었고 지난 7. 1. 고향인 강릉의 경포마라톤까지 사이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현장서 찍어 온 수백장의 사진들을 여러차레 보면서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요동반도를 둘러 싼 우리와 중국의 역사와 백두산의 자연과 인문지리등은 물론이고 중국과 우리의 현안문제등에 관한 책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위 여행기에 소개한 책들 외에 소개하고 일독을 권하고 싶은 것은 손경석님의 `북한의 명산`(서문당), 김태정님의 `백두산의 우리꽃`(현암사), 문정인님의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와 영국인 영 허스번드의 `카라코럼을 넘어서`(The Heart of Continent)와 `히말라야의 경이`(Wonders of Himalaya)입니다.
      문정인교수님의 책은 문교수님이 2009-2010년 중국에 체류하면서 중국의 동북공정등 한 중 관계의 현안등에 관해 중국최고지성들과 대담한 내용을 싣고 있고 영 허스번드는 군인이자 탐험가로 1886년 서양인으로 최초로 백두산에 오르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바 있으며 1921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처음 제창한 히말라야 선구자로서 저도 위 책들을 읽고 중앙아시아나 캐라코럼에 빠져 곤륜과 K2 BC와 곤도골로라를 넘기도 한 적이 있는데 한편 1904년 영국 티베트 점령군 대장으로 장체성을 공격, 파괴한 장본인임을 소개 드리면서 저의 긴 탐방기를 읽어 주신 달님이 벗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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