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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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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달사 댓글 0건 조회 6,825회 작성일 1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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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깊은 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잠든 밤인가?
아니면 잠든 체 하고 있는 것인가?
소리 없는 밤, 적막한 밤에
김수영시인의 <말>이라는 시를 소리 죽여 읽는다.

“나무뿌리가 좀 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았다.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이 가슴의 동계動悸도 한기寒氣도 내 것이 아니다.
이 집도 아내도 아들도 어머니도 다시 내 것이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의 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秩序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價値로 변해버렸다.

익살스러울 만치 모든 거리가 단축되고
익살스러울 만치 모든 질문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고告해야 할 너무나 많은 말을 갖고 있지만
세상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무언無言의 말
이 때문에 아내를 다루어지기 힘들어지고
자식을 다르기 힘들어지고 친구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이 너무나 큰 어려움에 나는 입을 봉하고 있는 셈이고
무거운 무의식無意識을 자행하고 있다.

이 무언의 말
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偶然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싫어하는 말,

이 만능萬能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내 말이 나의 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때,
그때가 언제 있었던가?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어쩌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그 때’가
내게도 있었던가?

하고 바라보는 창문 너머에
지금 눈이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리 없이 내리는 눈,
그 눈은 지상에 떨어지면서 마지막 말을 토해내는 것은 아닐까?

‘나 이제 편안하다’ 고

계사년 이월 열사흘.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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