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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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2회 보스턴마라톤을 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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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재홍 댓글 1건 조회 17,581회 작성일 08-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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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보스턴! 보스턴! 해도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꼭 마라톤을 외국에
까지가서 뛰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어찌나 마라톤 마니아라면 모두가 참가
하고 싶은 대회가 보스턴마라톤인데 참가자격도 되는 녀석이 왜 가지 않느냐고 묻곤 하기에 하루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러다가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 후회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겠지! 하는 생각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스턴마라톤은 좀 특별한 것 같다. 자격제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통과 역사
와 권위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대회로서 우리선수들이 3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대회이기 때문이
다. 1947년 즉 내가 태어난 해에 서윤복 선수가 우승했고 1950년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
가 나란히 1,2,3등을!, 최근 2001년에는 우리의 봉달이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했으며 올해는 그
112회째 대회가 개최되었다.

4/18(금)
아침8시 10분경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에 합류하여 "S&B 투어(주)에서 마련해 준 등에 Boston Marathon Teem. OH JAE HONG.이란 글자
가 새겨진 추리닝으로 윗도리만 갈아입었다.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위한 5박6일의 첫시작이다. 우리
팀은 동반자를 포함하여 총36명이었다.(마라톤 참가자는30명) 11:10 에 출발하는 nwa기를 타고 나
리타와 미네아폴리스에서 환승하여 뉴욕에 도착한 시각이 저녁 7:30분, 거의 하루가 걸린 셈이다.
기내에서 한 외국인이 유니폼을 보고 보스턴으로 가느냐? 마라토너냐? 말을 걸며 엄지를 치켜든다

미네아폴리스 공항에서도 환승대기 중 어떤 성직자모습의 분이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느냐고 물어
서 그렇다고 하니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있으니 피로한 중에도
기분이 좋았다.
뉴욕에 도착하여 먼저 친구에게 전화부터 했다. 한식당에서 오랜만에 친구부부를 만났다. 너무나
반갑다! 옛날과 변함없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다. 소주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짧다. 일행들은 벌써 숙소로 떠났고 우리는 12시가 넘어서까지 얘기를 하다 바래다준
숙소에서 아쉽게 헤어졌다.

4/19(토)
시차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질 않는다. S&B 투어에서 준비해 준 멜라토닌 1정을 먹고 잠을 청했다.
잠간 자고 깨고를 반복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4시반, 지금 서울은 오후5시반이다. 할 수없이 룸 동료
와 몸이나 풀자며 바깥으로 나왔다. 이른 새벽의 맑고 싸늘한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몸
풀기 조깅을 30여분 하니 날이 완전히 밝아 버렸다.

오전에는 엠파이어빌딩, 자유의 여신상, 그라운드0, 월스트리트 등을 관광하고 오후 2:30경 보스턴으로 향한다.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가는 동안 버스에서도 계속 졸며 가다 오후 6:30경 드디어 그 보스턴에 도착했다.
아리랑식당에서 식사 후 거리 구경을 나오니 또 어떤 이가 우리일행에게 마라톤에 참가 하느냐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제의한다. 나온 김에 거리의 상점들을 잠간 둘러보고는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잘 잘 수 있을까? S&B 투어에서 세심하게 준비해준 멜라토닌 2알을 먹고 잠을 청해 본다.

4/20(일)
멜라토닌 덕분에 서너 시간 자고 아침에 단체로 조깅을 했다. 원래 오늘 아침에는 대회주최측 주관
으로 Freedom Run 행사가 열리는 날인데 올해는 U.S. Olympic Team Trials(Women`s Marathon) 대회
때문에 이 행사가 열리지 못했기에 여행사인 S&B 투어에서 단체로 몸 풀기 조깅을 실시한 것이다.

아침 식사 후 Hynes Convention Center 마라톤 Expo장으로 향했다. 시내에 도착하니 응원열기로 왁
자지껄하다. Trials대회에 참가한 기록이 늦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한 명, 한 명마다 응원하
느라 야단이다. Expo장에서 배번호와 티-셔츠를 수령하고 마라톤 용품들을 구경하고 나오니 대회는
끝이 나 있었다.

오후에는 MIT공대와 하버드대학을 견학했다.
MIT공대 기계공학부 박물관에는 전 세계 유명한 배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그
유명했던 거북선도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일하게 설계도가 없는 배! 전 세계의 유명한
배들 중에 우리의 거북선이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큰 자부심을 느꼈
다.
학생관(?) 건물 복도에는 2차 세계대전당시 조국의 부름도 없는데 스스로 자원입대하여 조국을 위
해 싸우다 산화한 학생들의 이름이 벽면에 하나하나 새겨져 있었다. 학생들에게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새겨 놓은 것은 아닌지? 또 한 곳에는 역대 이 대학
에 크게 기부, 기여한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부부의 사진도 붙
어있었다.

하버드대학은 세계 제일의 대학답게 그 크기에서도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설립당시
재정난으로 개교도 못하고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인 이 대학을 존 하버드라는 목사가 전 재산을
기증하여 개교하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하버드대학으로 명명했단다. 건물 앞에 새겨진 그
의 동상 왼쪽 발등은칠이 벗겨진 채로 노랗게 반짝거렸다. 발등을 문지르면 자손 중 누군가가 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란다. 나도 그 발등에 손을 대고 사진 한 컷을 찍었다.
학교가 워낙 크다보니 시내 도로가 학교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학생들이 외부에서 생활할 수 있는
모든 시설들이 학교 내에서 영위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저녁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짐 정리와 준비물을 대충 챙겨놓고 보니 11시가 조금 지났다.
내일이 디-데이라 고맙게 챙겨준 멜라토닌 2알을 먹고 잠을 청한다.

4/21(월)
자다 깨다 눈을 뜨니 새벽 3시가 좀 넘었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4시반경 룸 동료와 같이 일어나 버렸다. 모닝콜 한 시간 전이다. 역사적인 보스턴마라톤의 날이 밝
아오기 시작했다. 우선 꼼꼼히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한 뒤 창문을 열어보니 무척 흐리고 쌀쌀한
것 같은 날씨다. 러-닝복으로 민소매와 반팔을 고민하다 추울 것 같아 결국 반팔을 선택했다. 배번
호를 부착하고 여행사에서 나눠준 조그마한 태극기도 왼쪽 가슴에 붙이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7시10분경에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Hopkinton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자들을 실은 노란스쿨버스
행렬들이 많이 눈에 뛴다. 주자들이 모이는 Green zone 에 도착하니 생각보다는 의외로 조용하다.
한국 같으면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몸을 푼다고 뛰는 사람, 페이스메이커, 동행한 가족 등으로 왁
자지껄한데 여기서는 전혀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주자들만 모이는 장소라 그런지 담담하게 앉아
있는 사람,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 책을 보고 있는 사람 등 그 모습에서 마라톤을
그냥 평화롭게 즐기려는 듯 한 그들만의 멋이 느껴진다. 군데군데 커피, 빵, 음료수 등을 나누어 주고 있었
고, 기념사진을 찍어 사이트에 올려 유료로 찾아가게 열심히 사진을 찍는 사진사도 있었다. 나도
일행과 배번호를 잘 보이게 하고 사진을 한 컷을 찍었다.

날씨가 싸늘하여 느지막이 옷을 갈아 입고 짐을 맡겼다. 추워지니 바로 그 예의 신체적신호가 온다.
얼마 후 출발선으로 모두들 이동이 시작되었다. 이동 도중에 또 신호가 와 어쩔 수없이 화장실을 찾으니 없어
다음 블록까지 가도 마찬가지라 추위에 몸도 풀 겸 그룹을 이탈해 한 10분을 뛰어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볼일을 보고는 출발지로 가니 출발선부터 꽉 찬 행렬들이 죽 늘어서서 그룹별로 대기하고 있었다.

wave1은 10시, wave2는 10시30분 출발인데 시계는 10시가 다 되어간다. 내 위치로 가려는데 LA에서
왔다는 교포노인 한 분을 만났다. LA대회에서 이번에 겨우 참가자격을 얻어 소원을 풀었다고 무척
이나 기뻐하며, 한국에서 왔느냐고 반가운 표정으로 묻는다. 그래서 기록이 어떻게 되시냐고 물으
니 4시간 25분이란다. 연세는 72세, 마라톤은 10년 전에 처음 시작했다고 하신다. 아니 그러면 지
금 내 나이에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닌가? 정말 놀랍다. “어르신 존경합니다.”고 격려를 해 드렸다.
그 연세에 지금까지 무리 없이 풀-코스를 뛴다는 게 정말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우리일행 중에도 풀-코스 95회와 울트라마라톤(100km)을 완주까지 하신 67세 되는 대단하신 분도 참가하고
있지만 그 분보다 5년이나 연상이다. 잘 뛰시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찾아 가는데 햇볕이 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니! 안개를 흐린 날씨로 착각한 것인가? 순간 민소매가 아쉬워진다.

드디어 출발이다. 나도 출발을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물밀듯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도로는 3
차선의 폭이고 기록순서대로 그룹별로 간격을 끊어 출발하니 그 많은 주자들이 물 흐르듯 흘러가기
시작한다. 양쪽 길가에는 Hopkinton 주민들이 모두 다 나왔는지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모두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한다. 컨디션은 별로지만 그래도 4시간안쪽으로는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내 자
신도 그 도도한 물결 속으로 서서히 휩쓸려 들어갔다.
8km까지는 내리막이 많아 오버페이스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달린다. 응원 나온 꼬마들과 하이파이브
도 해가며 한참을 가다보니 사람들이 뜸한 지점의 숲 속에서 누군가 일을 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기회다 싶어 얼른 일을 해 치우고 다시 뛰어 나간다.

서울에서는 간혹 외국인이 눈에 뛰면 유심히 보기도 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거꾸로다. 주위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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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오재홍 선생님과 함께한 보스톤 마라톤 여행 저 또한 즐거웠습니다.

사진 CD는 발송해드렸으므로 곧 도착할 겁니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낄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음에 주로에서 뵙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감기 조심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