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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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100번째 서브3, 마라톤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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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배 댓글 3건 조회 31,381회 작성일 17-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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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필자 박성배(56) 씨는 40대 중반까지 등산 마니아였다가 홧김에 마라톤 동호인과 벌인 하프마라톤(2005) 내기에 이기면서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2007년에 서브3를 달성했고 2010년엔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계기로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 서브3완주 도전을 시작했다. 같은 해 베를린마라톤과 뉴욕마라톤, 2011년 런던마라톤과 시카고마라톤에서 모두 서브3 기록을 달성해 도전에 성공했으며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초임을 인증 받았다(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례는 없음). 이후 기 완주한 도쿄마라톤이 메이저대회에 편입되면서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완주자가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 서브3 완주’를 목표로 세계 각지를 누비는 중이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시간 45분 48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 대기록은 시련을 동반하는 걸까




연말이 되어 되돌아보니 2017년은 부상과 사투를 벌인 해였다. 2015년 종아리 파열로 인해 그해 운동을 거의 쉬다시피 한 뒤로는 내 나름으로 상당히 조심을 해왔었다. 그런데도 운동이 과했던 모양인지 올해는 도쿄마라톤에서 햄스트링이 완전파열 되는 큰 부상을 당해버렸다. 가까스로 재활해서 4월 비엔나마라톤에 출전해 아슬아슬하게 서브3(2:59:32)를 달성하고, 한국에 돌아와 두 차례 풀코스에 출전해 턱걸이 서브3 기록을 냈다. 여름시즌엔 대회 출전을 삼가고 남산 코스에서 담금질을 했다.


 


하계훈련 후 첫 대회는 8월 말 열린 훗카이도마라톤이었다. 코스 난이도는 무난했는데 햄스트링 통증을 참고 뛴 데다 30km 이후 복통에 시달리면서 2시간 58분대의 섭섭한 기록으로 골인했다. 9월 중순에 국내대회를 하나 더 뛰었고, 9월 셋째 주에 열리는 블라디보스톡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 대회는 더 잘 뛰고 싶었는데 내 맘대로 되지가 않았다. 출국 직전 전원주택 우수관 공사가 엉망인 것을 발견하고 종일 삽질을 하는 바람에 몸살이 나버렸다. 블라디보스톡 현지에서는 대회 당일 새벽 엄청난 비가 쏟아졌고, 공교롭게도 내 아침도시락이 배달되지 않았다. 뛰다가 심한 부상을 입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레이스 시간이 다가오자 다행히 날씨가 맑게 갰지만 나는 과감하게 출전을 포기했다. 함께 간 한국 참가자들과 인솔자로 동행한 마라톤 전문 여행사(에스앤비투어) 대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컨디션이 좀 나쁘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완주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출발하고 나면 어떻게든 서브3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해외대회에 나가서 출발조차 안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서브3 100회의 무대 오사카마라톤


 


가을 시즌에도 햄스트링이 완전히 낫지 않았다. 오히려 오른쪽 발목 통증이 추가로 나타났다. 그로 인해 무의식중에 왼발을 더 쓰다 보니 왼쪽 종아리에도 통증이 생겼다. 3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어쨌든 페이스가 무너지지는 않아서 ‘조선춘천’과 ‘중앙서울’을 포함해 5번의 풀코스 대회를 소화했다. 부상상태를 감안하면 대회를 조금 줄일 만도 한데 다소 무리를 한 이유는 통산 100번째 서브3 완주를 연내에 달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스케줄을 맞추다 보니 100회 서브3의 무대는 11월 26일 오사카마라톤이 됐다.
 
성큼 겨울이 다가온 한국에 비해 오사카는 단풍이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10월말 날씨와 비슷해 달리기엔 적당했다. 오랜 부상과 그로 인한 훈련량 부족(보통 월 300km 내외였지만 10월엔 200km도 못 뛰었다)을 감안해서 기록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서브3 기록은 무난히 달성할 정도의 몸 상태이므로 가급적 무난하게 완주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가짐이 허술했던 것일까. 사소한 몇 가지 준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무난해야 했던’ 오사카마라톤 레이스는 엉망이 돼버렸다.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것은 이미 출발신호가 울린 뒤였다. 당연히 몸이 풀려야 할 시간인데도 몸이 풀리지 않고 무거웠다. 전에 없이 거북하고 둔한 초반 레이스였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해외마라톤이라면 이골이 난 나인데 뭘 빼먹은 거지?


 


이미지트레이닝. 늘 하던 그것을 이번엔 하지 않았다. 대회 전날엔 항상 코스도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스스로를 북돋고 자극하는 나만의 주문을 외웠는데 이번엔 하지 않았다. 새벽에 잠에서 깬 뒤 커피를 마시면서 몸을 서서히 깨우는 나만의 루틴도 이번엔 건너뛰었다. 대회날 반드시 챙겨먹던 옥타코사놀도 먹지 않았다. 왜 그랬지? 마음가짐이 허술했나? 어느 대회보다도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맘 놓고 있던 레이스에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옷을 든든하게 입고 출발한 뒤 레이스를 하면서 순차적으로 옷을 벗으려고 했는데, 겹쳐 입는 순서를 틀렸던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맨 안쪽부터 ‘긴팔-반팔-반팔’ 순으로 입어야 후반 레이스를 긴팔 하나만 입고 뛸 수 있는데 ‘반팔-긴팔-반팔’ 순으로 입어버렸다. 하의 역시 하프타이츠를 입으려고 했는데 뭐에 홀렸는지 롱타이츠를 입고 나왔다.


 


이걸 어떻게 하나 생각하다가 일단 4km 지점에서 두건을 벗어던졌다. 비싸게 주고 산 것이라 아까웠지만 답답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5km 지점에서는 바깥에 덧입은 반팔을 벗어던졌다. 상체가 한결 가벼워졌지만 몸이 무거운 느낌은 여전했다. 그렇게 몸이 안 풀리는 레이는 처음이었다. 달릴수록 기온이 오르고 땀이 많아지면서 상체가 불편했다. 복장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긴팔을 벗고 반팔만 입고 뛰어도 문제는 없지만 긴팔 옷에서 번호표를 떼어 달리면서 반팔에 부착하는 게 골치 아픈 일이었다. 고민 끝에 20km 부근에서 결정을 내렸다. 달리면서 웃통을 완전히 벗고, 맨 안쪽 반팔을 버린 뒤 허우적거리며 긴팔을 다시 입었다. 아마 근처에서 달리던 다른 주자들은 ‘저 사람이 멀쩡히 달리다가 왜 저러나?’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일단 복장이 해결되고 나니 달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래도 페이스가 좀처럼 살아나지는 않았다. 나름 열심히 뛰는데도 킬로미터당 4분 8~10초 정도로 느린 페이스가 찍혔다. 하프 지점을 지난 기록이 1시간 27분 45초였다. 부상이 있긴 해도 서브3는 무난하다 여겼는데 완주기록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25km 지점에서 서브3 페이스메이커를 발견했다.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조바심이 일었다. 힘을 내서 페이스메이커 그룹을 추월했지만 고작 이삼십미터 앞서가는 정도였다. 나와 같은 페이스로 페이스메이커를 추월한 젊은 여성 주자와 함께 조금씩 조금씩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35km까지 달리자 흐름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바닥에 눌어붙은 발을 몸뚱이가 억지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는데 35km를 지나자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아 이젠 됐구나~’ 안도감을 느끼면서 여성 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끌어주며 달렸다. 이전의 어떤 대회보다도 달리는 재미를 만끽하며 후반 레이스를 즐겼다. 앞서 달리던 주자들을 하나 둘 추월해나갔다. 함께 달리던 여성 주자도 내 페이스가 벅찼는지 뒤로 처졌다.


 


어느덧 결승점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지옥과 천당을 넘나든 드라마틱한 레이스가 결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기록은 2시간 56분 56초. 훌륭한 기록은 아니지만 뿌듯하고 감사했다.


 



 


결승점 너머에서 되돌아본 마라톤의 의미


 


오사카마라톤 결승점을 지나면서 다시 한 번 내 마라톤 인생을 반추해보았다. 전 세계 골드라벨 대회에서 모조리 서브3 완주를 달성하겠다는 그 무모한 도전정신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해마다 온 힘을 다해 몸을 만들고, 골드라벨 대회를 찾아 세계를 누비는 열정은 어디서 생겼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 골드라벨을 획득하는 대회가 빠르게 증가하고, 한편으론 골드라벨이 취소되는 대회도 생기면서 목표 달성 시기를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3년 전쯤부터는 먼저 서브3 100회를 달성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서브3 100회.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기록이다. 러너들에게 풀코스 100회도 서브3도 넘기 어려운 벽이다. 그런데 두 가지를 합쳐서 달성해버렸다.


 


감격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하다.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번 오사카마라톤에 참가한 한국 러너 20명 중에는 72세 김무조 선생도 있었다. 올해 봄에 풀코스 400회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마라톤을 시작한 게 63세 때라는 점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걸음도 불편한데 풀코스를 제한시간 내에 완주한다는 사실이다.


 


김무조 선생은 장장 5시간 50분 만에 오사카마라톤 결승점을 밟았다. 제한시간 6시간을 10분 남기고 골인한 것이다. 그는 한국 참가자들의 집합장소로 와서 ‘오래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나는 3시간 40분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전혀 불편하지가 않았다. 김무조 선생에게는 ‘정말 최선을 다한 5시간 50분’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브3 100회와 제한시간을 꽉 채운 400회. 러너들은 전자 쪽을 부러워하겠지만, 정말 대단한 것은 후자 쪽이 아닐까. 분명 몸 컨디션은 마라톤을 하기에 무리인데 강인한 정신력으로 거뜬히 극복해 내는 모습은 나에게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내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서브3 공식 100회(오사카마라톤까지는 비공식 참가가 2회 포함된 100회다) 세리머니를 한 다음부터는 나의 마라톤이 조금은 다른 색깔을 띠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라토너 박성배의 해외마라톤 완주 기록] 


2008년   도쿄마라톤   2시간 56분 17초   골드라벨
2009년   이브스키마라톤   3시간 18분 10초(건타임) 
2010년   보스턴마라톤   2시간 58분 43초   골드라벨
2010년   베를린마라톤   2시간 51분 26초   골드라벨
2011년   런던마라톤   2시간 53분 20초   골드라벨
2011년   뉴욕마라톤   2시간 48분 58초   골드라벨
2011년   시카고마라톤   2시간 49분 21초   골드라벨
2012년   도쿄마라톤   2시간 53분 14초   골드라벨
2012년   보스턴마라톤   3시간 06분 26초   골드라벨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   2시간 55분 22초   골드라벨 취소
2012년   호놀룰루마라톤   2시간 55분 13초   골드라벨 취소
2013년   샤먼마라톤   2시간 56분 52초   골드라벨
2013년   프라하마라톤   3시간 06분 23초   골드라벨
2013년   베이징마라톤   2시간 51분 14초   골드라벨
2013년   아테네마라톤   2시간 59분 06초
2014년   암스테르담마라톤   2시간 57분 30초   골드라벨 
2014년   싱가포르마라톤   3시간 04분 47초   골드라벨
2016년   파리마라톤   2시간 51분 11초   골드라벨
2016년   로마마라톤   2시간 49분 08초   골드라벨
2016년   프랑크푸르트마라톤   2시간 47분 56초   골드라벨
2017년   비엔나시티마라톤   2시간 59분 32초   골드라벨
2017년   훗카이도마라톤   2시간 58분 16초  
2017년   오사카마라톤   2시간 56분 56초   골드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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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인효님의 댓글

이인효 작성일

아무나 달성할 수 없는 기록!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드립니다.

강민옥님의 댓글

강민옥 작성일

블라디보스톡에 같이 동행했던 강민옥입니다  열정을 저도 배워가겠읍니다

김진태님의 댓글

김진태 작성일

박성배 선배님 마라톤열정 존경스럽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뵙게되어서 좋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마라톤 열정 이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