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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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압록강국제마라톤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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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홍규 댓글 0건 조회 10,401회 작성일 1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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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 짜요!!

모름지기 여행이란 누구와 함께 떠나느냐가 중요하다.
해외마라톤대회에 첫 참가하여 완주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명소를 관광하면서 주고받는 대화나 한 잔의 술이 신선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법하다.


한라에서 백두까지에서 이름을 딴 한백마라톤클럽은 윤강원회장의 추진으로 지난 일 년 간 푼돈을 모아 에스앤비투어가 주선하는 3박4일의 마라톤 여행을 떠난다. 창설 초기에 한라산을 등정하고 꿈같이 여겨지던 백두산탐방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5월 28일 김해공항 집결시간이 6시30분. 짐을 부치고 출국신고를 하고 심양 발 게이트를 통과하기까지 몇 가지 신상 털기 절차가 있었다.
8시 반 출발에 소요시간은 두 시간 남짓, 날씨는 쾌청했다. 비행기 날개위로 하얀 반달이 하늘 길을 같이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하늘을 날고 있을 때인 10시 14분 외교부에서는 웹 발신으로 북한 국경지역 여행 유의, 북중 접경지역 방문자제, 신변안전 각별유의, 해외 위급상황시 영사콜센터안내 등의 문자를 동시다발로 날리고 있었다.
이미 기체는 하늘에 떠있어 물리적으로 회항할 수 없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해외참가자가 위해를 당한다면 중국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북한인들 자기네들 선수까지 보내놓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호랑이 코털을 건드렸다가는 망신살이 뻗친다는 건 모를 리 없다. 우리도 개별행동을 피하면서 조심하면 된다.


내게는 믿는 구석이 따로 있다. 쓸모없는 (그들의 표현대로) 로인을 잡아 갈리는 없겠거니와 오십대로 착각하여 붙잡아가더라도 실제 나이와 출생지가 밝혀지면 그들은 대외 선전도구로 삼아 고향 방문에다 용구, 필구라고 이름만 들은 고종사촌형을 상봉시키는 이벤트를 벌인 다음 인도적인 사업이라는 포장을 하여 조기 송환할 것이다.
(양친은 경북 경산태생이나 생활이 궁핍하여 1942년 만주로 가던 중 강원도 세포산골에 안착하였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 밭을 일구고 화전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나를 낳고 이듬해 8. 15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낯선 곳에 왔어도 하나 낯설지 않고 눈에 익숙한 산하가 펼쳐진다. 심양에서 단둥으로 달리는 길 양쪽에 도열해 있는 포플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마치 어릴 적 고향산천을 달리는 기분이다.
그 시절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로수는 포플러였다. 신작로에 빽빽이 줄지어 있거나 동네 어귀나 들판에 우뚝 솟아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포플러가 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는데 중국으로 집단 이주해 버린 사실을 여기 와보고 알았다.


6, 25전쟁 통에 나온 유행가 백설희의 즐거운 목장을 들어보셨는가.
널따란 밀짚모자 옆으로 쓰고 휘파람 불며 불며 양떼를 몰고
포플라 그늘에 앉아쉬면 종달새는 비비베베
노래를 불러라 불러라 젊은이의 노래를
저 멀리 산마루에 타오르는 흰 구름도 춤을 추누나.
매미소리 자지러지는 여름날의 포플러는 암울한 시대에도 경쾌한 노래가사처럼 낭만이 서린 추억의 나무다.


소년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높이 가맣게 치솟은 포플러를 우러러 보았다. 우듬지 끝에 걸려있는 뭉게구름과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꿈을 키웠다. 포플러는 꿈을 먹고 자라는 꿈나무였다.
미루나무, 백양나무라고도 부르는 포플러는 성장이 빨라 30미터이상도 자란다. 윤기 나는 무수한 이파리가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햇볕에 굴절되어 유난히 반짝이고 깃발 펄럭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향기와 치톤피드를 다량으로 발산해 대기정화에도 탁월한 나무다. 까치가 별나게 이 나무를 좋아해 층층으로 집을 지었다.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의 여파인가?
그때 전방관측에 장애를 주는 미루나무가지를 치다가 북한경비병이 휘두른 도끼에 미군 두 명이 희생당한 아픈 역사가 있다. 하여간 산업화시기에 접어들고부터 우리나라는 포플러를 푸대접했다. 도로를 확장하면서 마구 베어내고 수종을 갈아치웠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종달새도 사라졌다.


중국은 어떤가.
일찌감치 돈이 되는 줄 알고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심고 가꾸었다. 중국인들은 포플러로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수출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제지와 펄프, 합판을 생산하면서 다목적으로 상업화에 성공하였다. 곳곳에 조성되어 있는 묘목단지를 보고 어림짐작으로 하는 소리다. 어떨까. 우리가 지금이라도 이들을 다시 귀화시켜 경제림으로 육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압록강 철교 바로 앞, 김정일이 묵었다는 중련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이 대주점으로 적혀있어 한문 풀이대로 규모가 큰 술집인가 했는데 주점이 호텔이란다. 어떤 곳은 한글로 호텔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압록강유람선에 올라 철교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강변 너머 지척에 신의주가 침묵 속에 잠겨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한반도북단의 우리 땅인데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와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중머리같이 빡빡 깎아버린 민둥산을 보면서 인민들의 고달픈 생활에 마음이 아렸다.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람을 보고 손을 흔들다가 공연히 자극할 수 있겠다 싶어 말았다.


압록강철교는 원래 두개였다.
하나는 그들 표현대로 항미원조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져 복원하지 아니한 단교이고 온전한 모습인 다른 하나는 중조우의교라는 다른 이름표를 달고 한반도의 비극을 상징해 주고 있다.
남침한 북괴군을 밀어붙이면서 압록강까지 진격해 올라온 한미연합군은 남북통일을 코앞에 두고 이 다리로 중공군이 꽹과리 치며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가는 바람에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이로부터 한반도는 강대국 틈에 끼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분단의 역사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고구려 때 확장한 그 광활한 만주벌판의 영토를 다 잃고 남아있는 한반도마저 삼팔선으로 쪼개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풍산개와 진돗개가 육십년 이상을 으르렁 거리는 형국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정권은 핵으로 자유세계를 협박하는 불장난을 포기하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동상을 용광로에 녹여 그 돈으로 쌀을 팔아 인민에게 선심을 베풀면서 천지개벽하는 중국의 굴기를 본받아 개혁과 개방에 힘쓴다면 장차 통일된 한국은 선진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신의주 쪽 압록강변에는 숲속에 민가로 위장한 초소들이 늘어서 있고 위대한~, 경애하는~, 선군조선의 태양~이라는 수사를 붙여 김씨 왕조 3대를 찬양하는 붉은 글씨의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있었다.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인 호산장성 가파른 계단 길을 올랐다. 아카시아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뻐꾹새가 허기지게 울었다.


첫날밤, 압록강철교가 바로 앞에 보이는 6층 명당을 차지한 회원 방에 모여 YaLu River(압록강)라는 상표의 맥주를 마시며 이국의 정취를 즐겼다.
듣던 대로 강 건너 신의주는 초저녁부터 깜깜한 암흑천지다. 낮에 본 민둥산이 떠올라 씁쓸했다. 인민들은 두더지 같은 노예생활을 하면서 강 건너 중국 땅의 고층 빌딩에서 뿜어 나오는 화려한 불빛을 보고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새벽 압록강변을 산책하였다. 시차가 한 시간이 늦어 적응할 것도 없다.
제니와 미쉘이 벌써 조깅을 마치고 한백 유니폼차림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번 대회를 위하여 보스가 특별 제작하여 기증한 태극마크에 한반도가 새겨진 붉은 유니폼은 컬러와 디자인이 뛰어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국선수들이 같이 사진찍자고 서로 끌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무덥고 시민들의 응원열기도 뜨거웠다.
그들이 합창으로 짜요, 짜요(힘내, 힘내) 라고 외치면 우리도 맞받아 짜요. 짜요 화답했다. 맞아, 당신네들 음식이 대체로 짜요. 짜드라구요.


강 건너 신의주를 보고 뛰느라 왼쪽으로 돌린 목이 뻣뻣했는데 반환점을 돌아올 때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뛰니 원상으로 돌아왔다.
공안경찰이 쫙 깔렸다. 이런 철통같은 경계 속에 무슨 허튼 짓을 할까 싶어 긴장되지도 않았다.
에스케이 마크가 선명한 아파트를 보고, 국산자동차도 보았다. 북한가곡이 흘러나오고 한복을 차려입은 미녀들이 문 앞에 서 있는 북한 식당을 여러 개 보았다. 한산했다.
뭐가 다른가. 남쪽과 똑같이 모터보트가 강물을 가르며 질주하고 숲에서는 홀딱벗고새가 웃어대고 길가에 노란 민들레가 피고 버드나무에서는 꽃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날이 너무 더워 온몸에 물을 마구 뿌렸다. 운동화가 질퍽였다.
간식대에서 봉사하던 여학생들이 태극마크를 알아보고 오바! 짜요! 파이팅! 하고 외친다. 오빤 강남스타일을 듣고 오바로 발음하는 것 같다.
내가 무리하게 풀에 집착하는 것은 주변을 고루 살피며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가슴에 담아 글감으로 남기고자 하는 버릇 때문이다.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길림성변방을 향하여 달렸다. 나는 거대 중국의 발전상이나 낙후성은 당초부터 관심 밖이다.
가도 가도 푸른 숲과 옥수수 밭이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손으로 모를 심는 것을 보니 향수가 살아난다. 마치 대한늬우스를 보는 것 같았다. 기후 탓인지, 먹이사슬 때문인지 우리나라 들판에 그 흔한 백로가 보이지 않아 약간은 적막해 보였다. 중국 개구리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산간지대를 몇 시간이나 달려 통화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다.


중국에서는 쫌 갑니다 하면 보통 너덧 시간이 보통이고 다 왔습니다 하면 아직 한 시간쯤 더 가야 한다니 천천히, 느리게 가 체질화된 만만디족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실감나게 들렸다.
2호차의 이춘화 가이드는 간명하게 해설하고 전달력이 뛰어난 강한 악센트가 매력이었다. 중국이라는 곳은요. 원래가 그래요. 음~뭐랄까.


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없어 신청하지 않았는데 미쉘이 슬쩍 이름을 올려놓았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침대가 놓인 룸에 들어갔다. 엉뚱한 상상을 했는데 칸막이도 없고 야릇한 손길도, 거친 숨소리도 없었다. 다들 시원하다고 하지만 아프기만 하고 빨리 끝났으면 싶었다. 내가 “아푸” 하자 마사지 걸이 한국말로 “아파? 살살 해?” 하여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심코 발을 보니 왼쪽 둘째 발톱이 삐쭉 나와 있었다. 이상하다. 출발 전날 깨끗이 깎았는데 빠트렸더라도 그렇게 긴 발톱이 있을 리 없다.


멘포드호텔, 한자로는 만복특주점이다. 어저께 밤에는 대주점에서 자고 오늘밤은 특주점에서 잔다.
우리 방은 3033호.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막강한 주력을 과시하는 주류파들이 이심전심으로 모여 3006 보스의 방을 접수했다. 45도의 고량주가 동이 나고 가져온 소주 스무 병이 상위에 올려졌다.
새벽 4시에 모닝콜이 울리고 4시 반에 아침식사를 하기로 스케줄이 짜 있는데 2시가 넘어 해산했다. 그 와중에도 30분을 더 연장한 잔류파가 있었다. 그만큼 분위기가 절정이었다.


복도를 돌아 내방으로 와서 문을 노크했다. 룸메이트는 훈남 류대장이다. 기척이 없었다. 깊이 잠들었구나. 벨을 누른다는 생각을 못했다. 아니 했더라도 요란하게 깨웠다가 나만 잠들고 그가 잠을 못 이룬다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약간 세게 두들겼으나 역시 반응이 없었다.
방금 헤어진 영맨 김렬방을 찾았다. 비주류인 그의 아버지가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 관세음보살을 읊었다. “하룻밤 적선하쇼” 젊은이와 내가 서로 바닥에 자겠다고 우기는데 관세음보살이 자신의 침대반쪽을 내 밀었다. 이내 곯아떨어졌으므로 그 다음 상황은 까마득히 모른다.


룸메이트는 2시까지 티브이 채널을 돌려가며 기다리던 중 깜빡 잠이 들었다가 퍼뜩 눈을 떠보니 3시였다. 불이 훤하게 켜진 상태이고 옆 침대가 휑뎅그렁하게 비어있다.
아직도 판을 벌이나 하고 보스 방으로 갔다. 연거푸 벨을 눌렀는데 기척이 없다.(하필 그 벨이 먹통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옆방에 투숙한 하시스터즈를 깨워 합동수색작전에 들어갔다. 객실 복도에 쓰러져 자나 하고 길고 각이 진 복도를 샅샅이 훑고 비상구도 뒤졌다.
괴한에게 납치되었거나 술에 취해 방 번호를 까먹고 이방 저 방 벨을 누르고 다니다가 얻어터져 어디 처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했다.


4시 모닝콜소리에 벌떡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룸메이트가 문을 왈칵 열어젖히며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평소의 젠틀맨답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그때까지 잠을 안자고 걱정하다가 멀쩡하게 나타나자 안도하면서도 잠시 성질이 뻗쳤던 모양이다. 백두산이고 뭐고 다 치우고 잔다면서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베이스캠프까지 대여섯 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하니 차안에서 눈을 붙이면 된다고 달랬다.


무장한 북한경비병이 중국으로 탈출하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강 건너서 망원경으로 마라톤 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동요를 일으킨 것일까.
마사지를 하지 않고 먼저 숙소로 들어간 일행들은 샤워하는데 공안이 들이닥쳐 방안을 수색당하는 소동을 겪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검문소를 지날 때 버스에 올라 훑어보는 공안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장백산은 멀기도 했다. 한나절을 좋게 달려 숲속에 있는 강원도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셔틀 버스를 갈아탔다.
하얀 둥치의 자작나무군락 숲속에는 투명한 햇살이 지상으로 내려앉아 흙과 수목에서 뿜어내는 정기와 어우러져 더 없이 청량했다. 고사해 쓰러진 죽은 나무뿌리를 뚫고 2세의 새 나무가 자라는 신비를 보았다. 장백산 다람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440개의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는 서파의 등산로는 완만하여 오르기가 수월했다. 계단 양쪽에 쌓인 눈이 키 두세 배 높이로 설벽을 이루고 있었다. 고산이라 오르는 동안 기압차이로 몇 번의 귀가 틔어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해발 2470미터. 거기까지였다.
평생에 못 볼 줄 알았던 백두산에 오르고 보니 감개무량하다. 이 말은 평생 아껴 두었다가 오늘 같은 날 처음 써 먹어야 한다.
도화지가 귀한 초등학교 이삼학년 때다. 형의 졸업장과 표창장 뒷면 백지에 크레용으로 천지를 그렸다가 호되게 야단맞았다. 그때 머릿속에 입력된 짙푸른 천지를 이렇게 두 발로 올라 바라보다니.
변덕스런 일기로 백번을 올라야 두 번 정도 볼 수 있다는 백두산 맑은 천지를 우리는 단번에 보았다. 누구의 공덕일까.


5월 마지막 날, 저 아래는 푹푹 짜는 한여름 날씨인데 백두산 천지는 한겨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최근 첨예하게 대치하는 남북관계처럼.
우리 한백은 드디어 로고대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목표를 달성하였으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 하루 빨리 남북이 화해하여 자유롭게 내왕하게 되면 맨 먼저 평양국제마라톤대회에 한백 이름으로 단체 참가할 수 있기를 민족의 영산 앞에서 기원해 본다.


유월이 지나야 해빙이 된다니 파도가 출렁이는 천지를 보지 못하고 칠팔월에 절정이라는 야생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고 손이 시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인력거가 대기하고 있었다. 왕복 한 행차에 십 만원이라고 들었다.


하산하여 금강대협곡을 돌아보았다. 까마득한 절벽 밑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화산분출로 생겨난 협곡에는 풍화작용으로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서 있었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화산재가 흩날리다가 내려앉는다. 무슨 현상일까? 우리나라 숲에는 어딜 가나 칡이나 담쟁이 같은 기생식물이 큰키나무를 마구잡이로 휘감고 기어올라 숨통을 조이는데 여기서는 그런 반칙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엄존하고 있음을 보았다.
청정무공해산소로 샤워하면서 힐링 한번 잘 했다. 일행들의 얼굴은 만족과 행복감으로 팽창되어 있었다.


수상하던 발톱은 압록강전투에서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는데 마사지 때 받은 이차충격으로 유체에서 막 이탈하는 중이었다.

( 2016년 압록강마라톤 참가자 한백마라톤 문홍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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