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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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라벨 서브3 도전의 고비 파리&로마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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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배 댓글 0건 조회 12,020회 작성일 16-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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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라벨 서브3 도전의 고비 파리&로마마라톤


편집자 주 : 필자 박성배(54) 씨는 40대 중반까지 등산 마니아였다가 홧김에 마라톤 동호인과 벌인 하프마라톤(2005) 내기에 이기면서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2007년에 서브3를 달성했고 2010년엔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계기로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 서브3완주 도전을 시작했다. 같은 해 베를린마라톤과 뉴욕마라톤, 2011년 런던마라톤과 시카고마라톤에서 모두 서브3 기록을 달성해 도전에 성공했으며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초임을 인증 받았다(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례는 없음). 이후 기 완주한 도쿄마라톤이 메이저대회에 편입되면서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완주자가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 서브3 완주’를 목표로 세계 각지를 누비는 중이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시간 45분 48초다.color=blue>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을 서브3 기록으로 완주하는 기나긴 도전은 생각보다 힘들다.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아니고, 달성하고 나면 무슨 포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한 대회 한 대회 ‘승수’를 쌓아나가는 재미로 도전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대회를 한 번 망치기라도 하면 도전 의욕이 땅에 떨어져버린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그저 남들처럼 관광이나 더 즐길 걸 뭐하러 기록에 목숨을 거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아마도 이번 파리마라톤 & 로마마라톤 도전에서 다시 실패를 맛봤다면 분명 도전을 그만뒀을 것이다. 두 대회가 몇 년 전 이미 실패를 안겨줬던 대회이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악연인가… 2013년부터 준비했는데 ‘1승’도 못하다니

세계 골드라벨 레이스 중에서도 파리마라톤과 로마마라톤은 내가 꽤 기대하는 대회였다. 거리가 먼 대신 두 대회가 2주 간격으로 붙어있어서 한 번의 여행으로 ‘2연승’을 올릴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유럽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대회들이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대회는 나와 별로 좋은 인연이 아닌 모양이었다. 213년에 파리마라톤을 신청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 여행상품을 취소해야 했다. (대회 참가비 250유로는 고스란히 날렸다)

2014년에는 로마마라톤(3월 셋째 주)과 파리마라톤(4월 첫째 주)을 모두 신청해서 가족여행을 겸해 떠났다. 그러나 출국 전에 심한 감기에 걸렸고 현지에서 호전되기는커녕 더 심해져서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그래도 먼 곳까지 왔는데 도전은 해봐야겠다 싶어 로마마라톤 출발선에 섰으나 12km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2주 동안 몸이 낫기를 기대하면서 여행 일정을 조심스럽게 소화했지만 도저히 대회를 뛸 수 있을 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파리마라톤은 포기하기로 하고 가족들과 귀국길에 올랐다. 장장 2주가 넘는 시간과 만만찮은 비용을 들이고 한 대회도 완주하지 못했으니 그저 참담한 기분이었다. 몸을 아끼느라 관광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에는 두 대회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가 올해 대회 상품 공고가 나자 망설임 없이 신청을 했다. 올해는 로마마라톤이 4월 둘째 주로 날짜를 옮기면서 파리마라톤(4월 첫째 주)과 1주일 간격으로 붙었다. 두 대회 모두 완주하려면 체력 부담이 크지만 여행 일정과 비용이 줄어드는 게 맘에 들었다.

3년 만의 파리 입성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4월 1일(금) 인천공항을 출발해 저녁에 파리공항에 도착했고 출발지와 가까운 개선문 근처 호텔에 짐을 풀었다.

다음날 전철을 타고 엑스포장에 방문했다. 일단 2만번대 배번을 수령한 후 미리 준비해간 뉴욕마라톤과 대구국제마라톤 기록증을 제시해 출발 그룹을 바꿔달라고 했다. 사전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된 일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룹을 변경해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2014년에 받은 1000번대 배번(최상위그룹)까지 보여주고서야 배번에 A그룹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골드라벨 대회라도 이런 일은 심심찮게 발생한다.

다음날 출발선에 서니 감회가 남달랐다. 3번째 도전 만에 처음으로 스타트를 해보는 것이니 꼭 완주를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여느 골드라벨 대회처럼 워밍업을 하지 않고 출발했다. 이런 규모의 대회는 워낙 사람이 많아서 한가하게 스트레칭이나 워밍업을 할 형편이 안 된다. 게다가 출발 후 일정 거리는 인파 속에 꽁꽁 묶이므로 그 동안 몸을 푸는 것으로 충분하다.

완만한 내리막길이 2km 지점까지 이어졌는데 죄다 아스팔트 아닌 돌바닥이었다. 서울 청계천 일부에 울퉁불퉁한 돌로 바닥을 깔아놓은 것을 상상하면 비슷하다. 마라토너에겐 쥐약인데, 이게 다 세계문화유산이라 개선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다행히 2km를 지나자 아스팔트 길이 나와 정상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컨디션이 너무 좋으니 오히려 부상 입을까 걱정

5킬로에서 시간을 보니 19분43초였다. 킬로미터당 3분55초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공기도 좋고 주변의 공원 풍경도 일품이었다. 자연스럽게 6명 정도가 그룹을 지어 달리면서 순탄한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갔다가 20km 이후 센느강을 조망하며 강줄기 따라 다시 시내로 들어가는 코스였다. 지하도로와 지상도로 오가며 자연스러운 언덕코스가 펼쳐졌다. 30km까지 5km당 20분을 넘기지 않는 페이스로 달렸다.

30km를 넘기자 함께 달리는 그룹이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했다. 따라가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레이스를 망칠까봐 부담이 됐다. 사실 이날 컨디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2014년 암스테르담마라톤에서 종아리가 파열될 때도 베스트 컨디션이었다는 걸 기억해 내고 몸이 움츠러든 것이다. 초반 돌바닥이 관절에 데미지를 줬을 것이라는 생각도 페이스를 올리는 데 부담으로 작용했다.

페이스가 점차 빨라지는 무리를 따라가다가 32km 지점에서 뒤로 빠졌다. 컨디션은 좋지만 안전한 레이스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암스테르담마라톤에서의 부상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소보다 아침식사를 적게 한 것, 20km에서 탄수화물 겔을 먹은 뒤 30km에서 하나 더 먹어야 하는데 실수로 조금 일찍(27.5km) 먹은 것 등이 후반 에너지 고갈로 이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느린 페이스의 주자들과 새로 무리를 지어 달리는데 36km부터 복통이 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속이 빈 상태인데 오른쪽 아랫배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후반에는 숨을 쉬기가 어려울 지경이 돼서 38~39km 지점에서는 달리기를 멈추고 서서 마사지를 했다. 통증이 줄어들자 200m 정도를 걷다가 서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조깅에 가까운 달리기라 뒤따르던 주자들이 순식간에 추월해갔다. 어림잡아도 100여명 이상 추월한 듯했다.

나는 보통 레이스 종반에 스피드를 끌어올려 추월하면서 레이스를 마치는 스타일인데, 정 반대의 상황을 맞게 되니 부아가 치밀었다. ‘아 이게 아닌데… 컨디션이 끝내줬는데’ 생각하며 억울한 마음으로 2시간51분11초에 결승점을 밟았다. 차라리 32km 이후 같이 뛰던 그룹을 따라갔으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좋은 기록으로 끝까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반대로 레이스를 완전히 망쳤을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3번 도전 끝에 파리마라톤 서브3 완주를 달성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레이스 후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서 관리만 잘 하면 로마마라톤에서도 어렵지 않게 서브3를 달성할 수 있을 듯했다.

다음날 파리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니체공항으로 이동해 모나코 왕국에 도착했다. 파리마라톤의 마지막 3km를 천천히 달렸기 때문인지 컨디션이 좋았다. 전력을 다한 대회 날은 잠을 설치곤 하는데 파리마라톤을 마치고는 잠도 잘 잤다. 모나코는 유명한 휴양지인데 아름다운 해변이 3.5km나 뻗어있어 장관이었다. 이 해변에서 가볍게 회복훈련을 했다. 화요일에도 해변을 조금 달렸고, 수요일에 로마로 이동한 뒤에는 목요일까지 관광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금요일에는 전에 가보지 못한 지역을 관광하는 날이라 일행과 함께 3시간 정도 관광지를 돌았다. 토요일에는 엑스포장을 방문해 300번대 A그룹 배번을 받았다.

일주일 만에 다시 풀코스… 로마의 돌바닥에 ‘도전’

2014년에 딱 12km까지만 뛰어 본 대회. 아무래도 실패했던 대회는 트라우마를 남기기 마련이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데도 상당히 긴장이 됐다. 미리 코스 답사를 하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12km 이후에 험한 돌바닥 구간이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일요일 아침 눈에 익은 로마시청 앞 출발선에 섰다. 출발신호에 따라 수많은 인파에 섞여 콜로세움 외곽을 돌았다. 무려 6km까지 돌바닥이 이어지는 로마마라톤 코스는 다시 뛰어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파리보다는 각각의 돌 크기가 커서 보다 안정감 있게 밟을 수 있었다.

해외대회에선 주로에서 만나는 레이스 파트너가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서 혼자 뛰거나 호흡 안 맞는 주자와 뛰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로마마라톤에선 초반에 기록이 비슷한 12명의 주자가 그룹을 이뤘는데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엘리트 여자선수 한 명을 남자 상위권 마스터스들이 둘러싸고 가는 형국이었는데,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한 명씩 앞으로 나와 그룹을 끌어주면서 순탄하게 레이스를 펼쳤다.

이 무리는 킬로미터당 4분 이내 페이스를 유지했다. 여자 엘리트 선수는 15km 지점에 이르자 그 페이스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둘려싸고 달리던 남자 마스터스들은 의외로 개의치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나갔다. 내가 여자선수에게 손짓으로 같이 가자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1km 정도 따라오다가 이내 포기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녀를 달고 가는 대신 내 무리와 함게 가는 쪽을 택했다.

로마마라톤의 긴 언덕, 남산에서 갈고닦은 하체가 빛났다

레이스 중반으로 가면서 코스는 굴불구불하고 앞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심할 때는 무리 중 키가 큰 주자가 앞으로 나와 바람막이 역할을 해 줬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남남인데 이렇게 호흡이 척척 맞을 수가 있을까. 그럲게 서로 끌어주며 22km 지점까지 줄곧 4분 이내 페이스를 유지했다. 이 페이스로 계속 갈 수 있을까. 혹시 또 복통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파리마라톤과 달리 공격적인 레이스를 펼쳐보기로 마음먹었다.

27~28km킬로 지점에서 500m 넘는 긴 언덕이 나타났다. 딱 봐도 이번 레이스의 승부처가 될 언덕이었다. 여기서 페이스를 줄이지 않고 평지와 비슷한 속도로 달렸다. 봄 시즌을 앞두고 남산의 굽이치는 언덕길을 달린 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언덕의 끝에 다다르자 내가 속한 무리는 6명으로 줄어있었다.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스피드를 올려서 달렸다. 이 언덕이 포함된 구간에서도 5km 구간기록이 20분 안쪽으로 찍혔다.

32~35km 사이에 두 번째 언덕 나타났다. 첫 번째보다는 다소 작은 언덕이었다. 여기서도 페이스를 줄이지 않고 돌파했다. 언덕 꼭대기 다다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무리 중 5명이 떨어져나가고 나만 홀로 남아있었다. 37km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대략 2시간 48분대 기록이 나올 것 같았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좋은 기록이었다.

그런데 37km부터 줄곧 돌바닥이 이어졌다.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는 로마의 관광지 모습과 같았다. 수많은 관중과 로마의 수려한 유적 등은 기분을 한껏 고무시키는데 다리에 가해지는 충격은 확실히 부담스러웠다. 남은 거리가 짧아 적극적으로 돌파하려 해도 조금씩 페이스가 느려졌다.

로마 한복판에서 멘탈붕괴, 결승점인줄 알았는데 41km라니!

결정적인 실수도 있었다. 어지 된 영문인지 40km 표지판을 41km로 잘못 읽었다. 결승점인 시청 건물이 눈에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다 왔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골인점인줄 알고 도착한 곳에 41km 표지판이 보이니 순간 정신이 멍해지면서 흔히 말하는 ‘멘탈 붕괴’가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힘을 쥐어짰지만 마지막 1km 구간은 5분대 페이스가 나왔다.

허우적거리며 골인한 시간은2시간49분08초였다. 48분대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한 기록이었다. 초반 6km와 후반 5km를 포함해서 대략 15km 정도는 돌바닥을 뛰어야 하는 대회임을 감안하면 몸이 잘 버텨준 셈이다. 약간 더운 날씨를 풍부한 바람이 식혀줘서 좋았고, 호흡이 잘 맞는 좋은 파트너들과 무리를 지어 달린 것도 훌륭했다. 파리마라톤에 이어 일주일 만에 뛴 대회가 아니었다면 더 좋은 기록이 나왔을 것이다.

사실 파리마라톤도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아떨어진 대회였다. 날씨가 화창하니 좋았고 로마대회와 마찬가지로 호흡이 잘 맞는 무리들과 후반까지 함께 했으며 파리공원의 나무그늘과 새소리는 없던 힘도 솟아나게 해줬다. 2013년부터 번번이 좌절됐던 두 대회 서브3 완주를 올해는 여러 가지 호재가 겹쳐 순탄하게 이룰 수 있었다.

길고 지루한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 서브3 완주 도전은 이번 2개 대회 성공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은 것 같다. 사그라들 뻔한 의욕이 다시 생겼고 자신감도 커졌다. 올해 가을엔 2년 전 완주에 실패했던 프랑크푸르트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이다. 아직은 해외에서 서브3 기록을 달성할 힘이 충분히 있고, 골드라벨 마라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터이므로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언젠가 이 지루한 도전도 끝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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