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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흐르는 눈으로 눈물 흐르는 눈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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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스앤비투어 댓글 0건 조회 6,343회 작성일 1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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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흐르는 눈으로 눈물 흐르는 눈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이별은 지극한 슬픔인데, 그 이별하는 모습을 묘사한 글들이 저마다 다르다. 울고 불며 매 달리는 서러운 이별의 장면을 묘사한 글도 있지만 반면에 담담히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글도 있다.

“이별할 때 그 슬픈 정감을 표현하되, 마음을 말하지 말고, 주변 정경을 묘사하듯, 새는 지저귀고 꽃은 피었으며, 물은 초록빛이고, 산은 푸르더라고 해야 한다.

어떻게 상황을 묘사해야 하는가?

”멀리 있는 산은 물결치지 않으며, 먼 산은 나무가 있지 않고, 멀리 있는 사람은 눈이 없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은 말을 하는 사람이고,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다.“

연암 박지원의 <종복소선 자서鍾北小選 自序>에 실린 글이다.

무심한 듯 애 간장이 끓는 듯한 그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글들은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곤 한다.

아래의 글은 계월이라는 기생이 이광덕李匡德을 위해 쓴 글인 <순행 오신 재상 이공을 이별함> 이라는 글인데 계월이 과연 그를 위해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 하다.

“눈물 흐르는 눈으로 눈물 흐르는 눈을 보니
애끓는 이가 애끓는 이를 대하였네.
전에는 책 속에서나 무심히 보았던 일
오늘 첩의 몸에 닥칠 줄이야 어이 알았으리.“

이별이 언제 오겠다고 오는 것을 보았는가, 느닷없이 오는 이별이기에 이별은 그토록 진하게 다가와 눈이 멀기도 하고 마음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 슬픈 글이 있다. <악장가사> 소재의 이상곡履霜曲에 나오는 글로 <성종실록>에 실려 전해오는 작품이다.

“때때로 벼락이 내리어 무간지옥 속에 떨어져
금방 죽어갈 내 몸일지라도,
한번 사랑한 내 님을 두고서 어찌 다른 임을 따르겠습니까?
더구나 이리 하자 저렇게 하자고 하는 기약이야 더욱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두고서 다른 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 임이시여 오직 죽어서라도 늘 당신과 함께 있게 있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많은 글 들 중에 중국 남조시대南朝時代의 문인인 강엄江淹이 지은 이별의 시인 <별부別賦>는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 여행하는 사람은 너무도 슬퍼 간장이 끊어지며, 온갖 감회에 마음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바람은 솨아솨아 평소와는 다른 소리를 내고, 구름은 너른너른 하게 깔려 종전과는 다른 이상한 빛깔을 띤다. 배는 물가에 정체하고, 수레는 산자락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돛은 흔들림에 내 맡긴 채로이니 어찌 앞으로 나아가랴. 말은 슬픈 울음을 울어 멈추지를 않는다. 여행자는 황금술잔을 엎어버렸으니 누가 술을 권하랴. 옥의 거문고발도 옆으로 누인 채, 눈물은 수레의 횡목을 적시누나.

집에 남은 사람은 수심 속에 자리에 누워, 마치 정신이 빠진 듯 멍하다. 태양이 벽에 숨어 빛을 거두고, 달이 처마 끝에 올라 주위를 비추게 되면, 홍란이 이슬에 젖어 반짝이는 것이 보이고, 개오동나무가 서리를 맞아 흰빛을 띠고 있는 것이 바라본다. 높은 기둥 밑을 돌면서 공연히 눈물을 삼키고, 비단장막을 어루만지면서 헛되이 처량함을 느낀다. 이별하고 떠나간 사람의 꿈도 이쪽 생각에 개운치 않으리라. 알겠고, 이별한 사람의 영혼도 이쪽이 걱정되어 천만갈래로 날아 가리라고 생각해본다. “

이 글은 강엄의 생애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글이다. 그는 일찍부터 혼자가 되어 고달픈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고향을 떠나 생계를 유지하였고 나중에는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혀 살았다. 니체가 말한 대로 “경험한 것만을 쓸 수 있다”에 들어맞는 사람이 강엄이라고 볼 수 있다. 강엄의 자는 문통文通이다.

삶이라는 것이 덧없어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뉘 있으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자신은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것이 약이고 아는 것이 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에 실린 글은 누가 쓴 글인지 정확하지 않은 “이상여 여우에게 제한 제문”이다.

아 슬프다. 나와 형이 교류를 나눈 지 오랜 세월이 지나갔네. 아, 그대 온 것은 올 때라서 온 것이고, 그대 가는 것, 하늘의 뜻으로 간 것이네. 때 따라 살고, 하늘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니 무엇이 슬프고 무엇이 즐겁겠는가마는 나는 이렇게 울고만 있으니, 이게 아마 그대의 마음은 아닐 것이네. 술 한 잔으로 고하고, 영결 뒤에 죽을 사람의 슬픈 푸념이지만, 이 사람 닭에 맛좋은 술 차려 놓았는데, 그대여, 오고 있는가?

운명인가 싶지만 아니라고 고개 흔들었던 그 세월이 어디 한두 해였던가. 그런데도 세월은 잘도 가고 그 사이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또 붉고 노랗고 파란 단풍이 지면서 찬바람 살랑살랑 분다. 아! 가고 오는 세월이여,

그 세월 속에 슬픔 가득한 <눈물 편지>라는 책 한권 부여잡고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임진년 동짓달 열나흘

대표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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